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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심문섭, 통영선 안 먹던 멍게·해삼 서울 와 즐겨
━ 예술가의 한끼 경남 통영 출신 조각가 심문섭. [사진 심문섭] 통영의 봄은 살이 막 여물어지기 시작하는 남해의 도다리와 해풍을 뚫고 고개를 내민 어린 쑥으로 만든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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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쁜 남자’ 끄집어낼 사람 어디 없소
‘영원한 윌리’, 배우 전무송(71)이 연기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한다. 연극인 가족으로 유명한 전무송 일가가 총출동한 작품 ‘보물’이다. 딸 전현아가 각본을 맡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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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배병우, ‘소나무’ 30년…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2007년 경남 함양. 그는 여느 때처럼 컴컴한 새벽길을 나섰다. ‘제대로 찍어보리라’ 점찍어 둔 소나무를 향해서였다. 이번이 벌써 수십 번째. 매번 허탕을 치고 되돌아왔다.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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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찾아 월남, 남쪽서도 ‘자유’ 못 찾아
구상 시인의 1998년 모습. [중앙포토] 1975년 구상 시인은 그때까지 써 온 시·평론·희곡·시나리오 가운데서 주요 작품을 추려 ‘구상 문학선’을 상재했다. 600쪽이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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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드라마센터 무대 서는‘유치진 제자’3인방
왼쪽부터 배우 이호재, 연출가 오태석, 배우 전무송씨. 배경은 동랑 유치진, "지금도 선생님이 저쪽 구석 한 모퉁이에서 툭 튀어 나오실 것 같아. 잘 하면 '무던하네'라고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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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0년 만에 무대 서는 '유치진' 제자 3인방
연극 '용호상박' 으로 30년만에 드라마센터 무대 서는 '유치진 제자' 3인방. 왼쪽부터 배우 이호재, 연출가 오태석, 배우 전무송씨. 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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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타임캡슐 1000년 1900~1999]
*** 미술 20세기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대중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인 이중섭(1916~56)은 가난.광기.요절 등 '천재 신화' 를 이루는 요소를 고루 갖춘 화가다. 그의 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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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나의 송사] 3. 두 얼굴의 TV-주철환 MBC PD
비교한다는 일 자체가 예의에 다소 어긋나긴 하지만 수천년을 버텨온 문학과 회화에 비해 방송은 1백년이 채 못된 역사를 지녔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성방송국(호출부호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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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연극제 넉달간 대장정-예술의 전당서
◐… ◐… ◐… ◐… ◐… ◐… ◐… ◐… ◐… ◐… 지난 20여년간 독특한 연극문법으로 우리 연극계를 대표해온 극작가겸연출가 吳泰錫의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하는 오태석연극제가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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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끼리 꾸미는 이색무대|대학 연극 줄 잇는다
각 대학 동문끼리 꾸미는 대학극단들의 연극 4편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한국 유일의 대학 상주극단 서강은 「클라우스·만」원작 『메피스토』, 연세대연세극예술연구회는 「손톤·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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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연극의 개척자-85세로 타계한 서환석씨
어제 85세를 일기로 타계한 서환석씨는 한국연극계의 선구자이며 산증인이었다. 함남 홍원이 고향인 서씨는 29년 동경대 독문과를 나와 동아일보기자 및 학예부장을 지냈다. 31년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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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선생 10주기…제자들이 추모공연
동낭 유치진선생의 추모공연『춘향전』이 제자들의 솜씨로 무대에 오른다. 서울예술전문대 동문회는 동낭 작고 11년만에 연극아카데미·서울연극학교·서울예전동문 2천여명이 모은 동문기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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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랑 유치진 선생 10주기 추모제
리얼리즘연극을 이땅에 뿌리내린 동랑 유치진선생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10일하오7시 고인에 대한 추모제가 드라머센터에서 열린다. 서울예술전문대 동문회가 마련한 추모제에는 추모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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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 연극계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연출자와 극본이었다. 그 대신 연기자들은 풍성했다. 더군다나 순수 극작품을 쓰는 쪽은 오직 유치진 선생뿐이어서 극본을 대느라 고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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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3)제58화 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50년대"문예"지 전후-조광현(46)
나의 문단생활은 주로 8·15해방과 함께 시작된 것이지만 해방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미 작고한 선배와 문우들이 상당히 많다.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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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제자는 필자|제5화「동양극장」시절(3)-박승희가 자비로…주연도 맡아 대사 막혀 중단 돈 물러주기도
「토월회」는 일본동경에 유학하고 있던 우리나라 학생들이 매주 모여서 요새말로 「세미나」라는 것을 하는 모임이었다. 그때의 「멤버」는 김복진(동경미술학교조각과·팔봉 김기진의 형)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