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12.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2)
아침 안개가 낀 들판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가을이 되니 늘 보던 풍경에도 기름기가 돌았다. 피난에서 돌아온 사람들도 하나둘 농사 채비를 시작했다. 논밭의 곡식은 농부에게 자식이나
-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11.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1)
평화는 짧았다. 안심하기엔 너무 일렀다. 정유년에 왜군은 또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불을 지르고 아이 눈앞에서 부모를 베어 죽였다. 시체가 노적가리처럼 쌓여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10. 이 맑고 시린 공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2)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다. 꽃과 열매와 바람과 공기도 절기 따라 바뀌었다. 매창의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계절과 풍경의 변화만으로 무엇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에게 이 세상
-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7. 벼락처럼 만나고 번개처럼 헤어지다 (3)
유희경이 돌아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 무섭게 아전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그가 유희경을 데려갔다. 현감이 잠시 보자고 한다는데 전쟁 때문인 듯했다. 밤늦게 돌아온 그는 입
-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5. 벼락처럼 만나고 번개처럼 헤어지다 (1)
유희경은 술상을 문 가까이 밀어놓고 매창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보료 위에 다리를 뻗은 채 편안한 자세였다. 장침 위에 한 팔을 괴고 매창을 향해 아까와는 다른, 탐나는 여인을 앞
-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4. 애이불비 애이불상 (3)
아픔이 아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고, 모자람이 모자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 순간 매창은 유희경이 자신과 닮은꼴의 영혼을 가졌음을 알아차렸다. 재능과 이상이 자신을 지
-
[7인의 작가전] 붕괴 #3. 붕괴 (1)
_ 붕괴 30분 전 때때로 컵라면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플라스틱 전기포트에 후루룩 끓인 물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주전자 주둥이로 뿌옇게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를 기다린다. 조심스
-
[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3. 애이불비 애이불상 (2)
현감은 술잔을 한 순배 더 돌렸다. 매창은 술대를 놓지 않았다. 유희경은 매창의 도도한 이마에 눈길을 붙박인 채 곡조에 귀를 열었다. 거문고 소리는 낮잠 자는 아이에게 부쳐주는 부
-
[7인의 작가전] 매창 #2. 애이불비 애이불상
춘분이 지나면서 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따사로워졌다. 매창은 마루에 앉아서 앞마당을 내다보거나 뒷마당을 걸으며 낮 시간을 보냈다. 배롱나무 이파리의 초록색도 날마다 새로 태어난 듯
-
[7인의 작가전] 매창 #1. 묵(墨)의 세상
깜깜하다. 세상은 색깔을 잃었다. 어둠은 탐욕스럽게 풍경을 삼키고 그림자를 지웠다. 빛이 사라지자 제 노래에 지친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 숨을 죽였다. 어둠은 형체를 찾는 이에게 소
-
[매거진M] 김기덕·김태용 감독을 사로잡은 신예 ‘그물’ 이원근
사진 : STUDIO 706‘이데올로기’라는 그물에 걸린 탈북 어부 철우(류승범)의 수난기를 다룬 ‘그물’(10월 6일 개봉, 김기덕 감독)엔 눈에 띄는 신인 배우가 있다. 철우를
-
[7인의 작가전] 환상 편의점 #6. 미래 안약 (4)
일요일이 다 갔다. 남자는 그때까지도 당첨번호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그 흔하던 로또 판매점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겨우 찾아낸 곳은 뭔가 문제가 있었다. 매점을 겸
-
사랑은 배워야 할 기술 좋은 관계를 열망하라
어쩌면 모든 사랑 이야기는 동어반복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이름만 바뀔 뿐 누구를 넣어도 한번은 겪어봤음직한 일들이 펼쳐지니 말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ㆍ
-
[2016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 문경민 '곰씨의 동굴'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들이 20일 한자리에 모였다. 문단 새내기들이다. 왼쪽부터 단편소설 당선자 문경민, 시 당선자 문보영, 문학평론 당선자 박동억씨. [사진 권혁재 사진전
-
[2016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 곰씨의 동굴
━ 학교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은 남자, 그는 매일 하얀옷을 입고 절을 했다 [그림=화가 김태헌]습관처럼 나이를 헤아리곤 했다. 다가올 겨울이 지나면 스물여섯이었다. 스물여덟이
-
[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1
나는 살해당했다 #1 한 남자가 낭떠러지 밑에서 발견되었다.내가 찾았다. 사지는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키 큰 수풀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두 눈을 부릅뜨고 전혀 미동도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모래 알갱이에 생명을 넣는 샌드일러스트 '하랑'
사진 취재 요청을 하며 취재기자가 물었다.“‘하랑’이라는 작가를 아세요?”“처음 듣는 이름인걸.”“샌드 일러스트를 하는 사람인데 혹시 버스에서 영상을 본 적 없어요?”버스라는 얘
-
[매거진M] "경성의 봄, 우리는 꽃이 되어 노래하리"…'해어화'의 한효주, 천우희
[사진 전소윤(STUDIO 706)]두 여인이 있다. 다정다감한 소율과 수줍음 많은 연희는 1940년대 경성, 권번(券番·일제강점기 기생 조합 및 교육 기관)에서 자랐다. 함께 노
-
[하늘과 바람과 세 남자와 詩] ‘동주’ 강하늘·박정민 그리고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 강하늘, 박정민. [사진=전소윤(STUDIO 706)]이것은 부끄러움의 기록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詩人)의 고백처럼.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청
-
[카메라 포커스] 이 정도 고생쯤이야! ‘극한 아르바이트’의 세계
“금수저? 헬조선? 저는 그런 말 몰라요.” 새벽 찬 공기 맞으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작업장에서 인생 배우는 4인의 청춘 장서원(19) 씨가 스키장 슬로프 한가운데에서 무전
-
악의 없이도, 남의 삶을 파괴하는 …
일러스트 김옥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이나 세 번 읽었을 때 더 좋아지는 소설이 있다. ‘스며든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
-
25세 나이차 극복한 문인 부부… 감동의 공동 산문집
박연준, 장석주 부부 [사진 이해선]1955년생 시인 장석주와 80년생 시인 박연준. 무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한 것으로 모자라 남들 다 올리는 결혼식 대신 공동 산
-
[시선 2035] ‘일하고 싶어 죽겠다’에서 ‘일하다 죽겠다’로
손광균JTBC 경제산업부 기자대학 신입생 시절 나와 친구들은 저마다의 미래를 품고 있었다. 산업은행에 들어가겠다던 Y는 수학 과외를 받아 가며 시간 날 때마다 도서관을 오갔다. L
-
[사건:텔링] 한국 유학갔다 뇌사 … 4명에게 새 생명 주고 떠난 우리 딸
사랑하는 내 딸 우위안신(吳元馨·가명·25)! 오늘(7일) 아침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터)에서 화장(火葬)을 앞둔 너를 마지막으로 보고 있어. 관 속에 누워 고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