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11.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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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짧았다. 안심하기엔 너무 일렀다. 정유년에 왜군은 또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불을 지르고 아이 눈앞에서 부모를 베어 죽였다. 시체가 노적가리처럼 쌓여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왜군은 조선인의 귀가 아니라 코를 베어갔다. 귀를 베면 살 수 있어도 코를 베면 출혈이 너무 심해서 살아나지 못했다. 문을 숭상하는 조선과 무를 숭배하고 최강 무력을 자랑하는 일본의 싸움은 애초에 맞상대가 되지 않았다. 임진란의 경험을 거울삼아 더 철저히 준비해서 쳐들어온 왜적 앞에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임진란 때 우리 조정은 명나라 장수의 충고를 귓등으로 들었다. 중국에서는 한물간 주자학을 신봉하여 고담준론을 일삼다가 학문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커서 임진란이 일어나게 됐다는 말은 새겨들을 구석이 있었다. 주자학은 진취성과 역동성을 억누르는 학문이었다. 쓸데없는 말만 앞세운 명분에 매달려 실리를 잃고 개혁을 가로막았다. 조선에서 생필품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명군은 명의 상인을 불러들였다. 화폐 대신 미포(米包)로 물물교환을 하는 조선에 동전 유통과 상업과 무역의 활성화를 권했다. 여행할 때도 무거운 무명 대신 은덩이 몇 개만 배낭에 넣고 다니면 되었다. 명나라 상인들이 명주를 들여와 전란 중에도 사치품이 만연하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 그나저나 죽어나는 것은 백성들뿐이었다.

언제나 밝은 날이 오려나. 세상은 뒤숭숭했고 하늘과 땅은 나쁜 소식으로 얼룩졌다. 과중한 부역과 조세에 시달리다 못한 백성은 고향을 버리고 떠도는 유랑민이 되었다. 한 끼 밥을 얻기 위해 양반 부호의 집을 털거나 능묘를 파헤쳤으며 관아의 물건을 훔쳤다. 전쟁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하고 유랑민이 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숫자를 셀 수 없었다. 대낮에도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으니 여자와 애는 문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미가 병으로 죽은 자식을 삶아 먹는다는 말이 헛소문이길 바랄 정도였다.

이번엔 제일 먼저 전라도를 진격해서 참혹하게 유린했다. 전주, 남원, 순천과 아울러 부안에도 피바람이 불었다. 고을 선비가 나서서 일으킨 호벌치 싸움에서 수천수만 명이 죽었다. 통곡소리가 몇 날 며칠 이어졌다. 매창도 한 달 넘게 월명암으로 피신 갔다가 그곳도 왜군의 공격으로 불타자 집으로 돌아왔다. 죽어도 집에서 죽자는 심사로 숨어 지냈다. 말 그대로 전쟁 같은 하루하루였다. 결국 전쟁이 끝났지만 몸도 마음도 폐허였다.

백성들은 믿을 건 의병뿐이라는 말을 조심스레 주고받았다. 의병들은 재산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움터로 나갔다. 대대로 초야에 묻혀 있던 전직 관리, 유생, 고을 유지들은 조정과 지방 수령의 무능함에 의지할 수 없어 내 민족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창의(倡義)했다. 나라를 국난으로부터 건지려는 것은 두 번째 이유였다. 피난 중에 민심의 이반을 본 임금은 의병조직이 역모로 발전할까 우려했다. 그들의 공을 세워주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자신의 위신이 서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용맹한 의병장이었던 김덕령이 역모 혐의로 맞아 죽는 광경을 본 곽재우는 산으로 은거해버렸다. 세상과 단절하고자 속세의 음식을 끊고 솔잎만 먹는 벽곡을 하였다. 곽재우는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부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의병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자신의 곡간을 열어 의병들을 먹여 살렸다. 백성들은 나라님을 입에 담는 것조차 더럽다는 듯 침묵했다. 밥 먹을 때 이외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술년에 일본의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왜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지옥만도 못한 삶을 마소처럼 견뎌댔다. 그녀의 삶도 다를 바 없었다.

“저 바람 속에서 벼르고 별러 여름과 가을과 세한이 지나고 나면 다시 꽃을 피우리니, 비낀 창문에 핀 매화를 볼 때마다 내 너인 듯 여기리라.”

유희경의 말은 의외의 상황에서 현실이 되었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이 오는 이치는 그녀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울증과 공포와 분노의 고개를 넘어 일상에 안착했다.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사람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김제 부사 이귀는 생일잔치에 기생들을 불러 연회를 열었다. 그는 거문고에 능한 매창을 초대했다. 잔치가 시작되자 꽃 같은 젊은 기생들의 가무가 이어졌다. 고달픈 삶 속에서 만나는 잔치라 다들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며 같이 어울렸다. 초무인 검무와 장고춤 사이에 악공들이 피리와 태평소를 불어 분위기를 띄웠다. 기생들은 하나같이 최고로 곱게 단장한 모습이었다. 이날은 근방의 방귀깨나 뀌는 인사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재주를 보이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선 안 된다. 기생들은 단장에 각별히 신경을 썼고 춤 연습에도 열심이었다. 공연을 눈여겨본 양반에게 낙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따라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점심때가 지나고 거의 끝 순서로 매창은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내 가슴에 흐르는 피로 님의 얼굴 그려내어
내 자는 방 안에 족자 삼아 걸어두고
살뜰히 님 생각 날 때면 족자나 볼까 하노라

목소리를 꺾고 내리고 부리는 품이 어찌나 서럽고 애절한지 좌중이 숨죽인 듯 조용했다. 노래는 잠자리나 나비의 뒤를 따라가듯이 허공을 부드럽게 누비며 듣는 사람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먼지 이는 공기를 가르고 목소리가 한 촉의 난초처럼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너의 재주는 짝을 찾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했구나. 외로운 날이 많겠다.”

그녀가 노래를 마치자 이귀는 곁으로 불러 술을 따르게 했다. 매창도 그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긴 정담을 나누었다. 이귀도 매창 앞에서는 지위로 상대를 내리누르려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었고 자신의 얘기를 했다. 누구나 언제든 임자를 만나면 풀어놓을 이야기 한 보따리쯤은 준비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가 아끼는 매창의 재주는 거문고 소리였다. 그녀를 쉬게 해주고 싶을 때는 시를 읊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그가 매창을 찾는 이유는 애간장을 툭툭 끊는 것 같은 거문고 소리 때문이었다.

“화용월태(花容月態)라더니 너를 두고 이른 말이다. 고운 얼굴에 재덕까지 겸비했으니 너는 하늘이 낸 사람이다. 곱기로는 얼굴이 네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겠구나.”

첫 만남 이후 그는 오라비처럼 늘 그녀를 챙겨주었다. 그녀의 가난한 살림을, 세상을 영리하게 이용할 줄 모르는 서툰 처세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매창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놀랐다. 그는 평소 사대부로서 권능을 내세우는 편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자리에서는 술상도 엎었다. 우락부락하고 눈빛이 이글거리는 외모부터 피가 끓는 관상이었다. 매창은 앙금 없고 직심스러운 그의 성품이 마음에 들었다. 내성적인 자신과는 사뭇 다른 면이라 오히려 대하기 편했다. 전해 듣기로는 싸움을 즐기는 호전적인 성격이지만 풍류와 멋을 아는 사내 중의 사내라고 했다. 지금도 갓에서부터 도포와 버선까지 섬세하게 고른 것들이었다. 갓이 내려오지 않게 하면 그만인 풍잠조차 멋을 부리는 사람이 선호하는 마노로 만든 것을 붙이고 있었다.

“네 곡조가 사람의 심사를 후벼 파는구나. 누가 너의 마음을 그리 사로잡았는지 그 자가 부러울 뿐이다. 그 뒤를 내가 이으면 아니 되겠느냐?”
매창에게는 주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상대방의 가슴 한가운데로 질러가는 말과 행동과 거문고 덕분이었다.

“쇤네의 나이 벌써 스물다섯이옵니다. 사랑의 진창에서 헤맬 기운이 더는 없사옵니다. 가끔 저한테 술이나 한 잔 따라드릴 기회를 주시어요. 적적한 날 불현듯 거문고 소리 생각나시거든 아무 때고 들러주시고요.”

“이렇게 실망스러운 일이 있나. 이리 어여쁜 여인이 사랑을 싫다 하니 나더러 어찌하라는 말이냐? 진창에 빠지지 않도록 내가 도와주면 어떻겠느냐? 울뚝불뚝하게 생겼어도 내 마음은 질화로처럼 따끈하다는 걸 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한번 진한 사랑을 맛본 사람은 절대 진창에서 오래 헤매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내 너에게 마른 땅만 밟게 해주마.”

이야기책에 나오는 달콤한 연정에서부터 자신의 머리를 얹은 부사와 차린 살림, 정인과의 이별, 매일 밤 그녀를 부르는 사대부들의 희롱.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과 욕망과 그것의 발현을 심연에서부터 밑바닥, 바로 코앞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익힌 사람이다. 누가 뭐라 하든지 그것이 불변의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귀도 길게 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박수를 두 번 치면서 노래를 한 곡 더 청했다.

“너의 장기인 듯싶으니 이번에는 더 짠한 것으로 부탁한다.”

매창은 허리를 곧게 펴고 숨을 한번 고른 다음 술대를 잡고 줄에 손가락을 얹는다.

송백같이 굳은 맹세하던 그날은
사랑이 깊고 깊어 바다였건만
한번 가신 그 임은 소식이 없어
한밤중 나 홀로 애를 태우네

거문고 소리는 매창의 핏줄을 통과해서 나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애간장이 끊어지게 노래를 부르는지 곁에 앉은 기생들조차 옷고름으로 눈가를 찍었다. 제각기 심중의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코를 푸는 아낙들 옆에서 괜히 헛기침을 하는 남자들도 여럿이었다. 저마다 저만 아는 설움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거문고 소리가 하늘 끝까지 가닿을 듯 긴 여운으로 잔치 마당을 흘러다니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매창을 향해 있었다.

“과연 매창이로고.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언제 내가 너의 시린 가슴 쓰다듬어주마.”

“고맙사옵니다. 언제 달 밝은 날 들러주시어요. 국화주 한 병 준비해두겠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거문고 연주 올리겠사옵니다.”
이귀는 흥감하여 너털웃음을 웃었다. 매창은 그의 흰소리나 장담이 싫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큰소리치며 자신을 믿게 하려는 그 마음이 좋았다. 매창은 그가 강개하고 호방한 인물이면서도 약자 앞에서는 정약한 면모를 보이는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날부터 더욱 가까워져 오누이처럼 은근한 정을 나누며 지냈다.

며칠 후 한 처녀애가 보퉁이를 가슴에 안고 매창을 찾았다. 쭈뼛거리며 대문 안을 들어서는 품이 어디서 눈칫밥깨나 얻어먹은 여자애 같았다.

“너는 누구냐? 어리디어린 사람이 어쩐 일로 이곳엔 혼자 온 것이냐?”

“여기서 매창 아씨를 모시면서 살라고 부사 어르신께서 보냈사옵니다.”

여자애는 잔뜩 주눅이 들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귀가 보낸 사람이었다.

“이름은 무엇인고? 부모님은 어디 사시느냐?”

여자애는 마침 울고 싶었는데 때려주었다는 듯이 울음을 터트린다. 한참을 훌쩍이더니 잘 들리지도 않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어머니는 삼 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작년에 노름빚이 무서워 도망친 후 감감무소식이어요. 이름은 윤금이옵고 성은 김가이옵니다.”
관아의 부엌에서 물을 길어주면서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고 했다. 얼굴에 그늘이 져서 조금 어두워 보이긴 했지만 말하는 것이나 옷매무새는 음전하고 야무진 데가 있었다. 이귀는 스스로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니 아무나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처음 객점을 차릴 때의 나이쯤 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열아홉 살이라고 하였다. 매창과 자매처럼, 식구처럼 지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다음날 이귀는 저간의 사정을 간략히 적은 편지와 함께 쌀 두 가마를 보냈다. 아버지 말고 그녀의 밥상, 잠자리,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훗날 이귀가 김제를 떠나면서 건네준 밭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거절한다면 그것은 땅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밭은 그녀의 밥상에 푸성귀와 잡곡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딱 그만한 크기였다.

유희경이 떠나고 매창은 여름이면 비와 우울의 냄새가 가득한 계절을 보냈었다. 이귀가 새 벗 노릇을 해주고 하루를 사람 사이의 온기로 채우자 생활에는 다시 활기가 찾아왔다. 기다림의 고통과 울증도 잦아들었다. 밤이면 거울을 꺼내 삶에서 빛을 잃은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곤 했다. 그 속에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의 허전함을 거울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작가소개
1964년 전북 익산 출생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저서로는 소설집『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On the road』, 에세이집『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 『소설수업』, 번역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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