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873)골동품비화40년(14)|박중래(제자 박중래)

    우리조상이 쓰던 밥사발 국사발을 들고 가보라고 황공해 하던 일본사람의 기호는 실로 그 내력을 소상히 알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일인들은 막연히 고려소가 기가 막히다는 얘기만 들

    중앙일보

    1973.10.15 00:00

  • (869)|골동품비화 40년(10)-제주도서 온 청자

    도굴하면 청일 전쟁이후 한일합방 당시까지 일인들이 개성 언저리의 청자를 마구 쑤셔간 때를 전성기로 봄직하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나라 사람이 골동에 눈을 뜨기도 전이어서 부지부식간에

    중앙일보

    1973.10.10 00:00

  • (865)| 골동품 비화 40년 (6)|박병래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계속 오름세를 보여 줄곧 값이 뛰기만 하던 골동품은 20여년 후인 194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비싼 것이 1만원 선을 육박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중앙일보

    1973.10.05 00:00

  • (863)|골동품비화 40년(4)-박병래

    한 30여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골집 뒤 주위에는 으레 파란 물감으로 목단을 그리고 완자무늬를 두른 백자항아리가 보통 하나 씩은 있었다. 어떤 연유로 뒤주 위에 덩그러니 앉게

    중앙일보

    1973.10.03 00:00

  • (862)|골동품비화 40년(3)|박병래

    전해들은 얘기와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골동에 대한 인식이 처음 생기게 된 것은 아마도 일인들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이후부터인가 한다. 도자기 기술이 일본이 전래

    중앙일보

    1973.10.02 00:00

  • (363) 소생하는 도자기문화

    한국의 전통적인 민속도예는 다시 소생되고 있다. 청자·분청사기·백자에 이르는 도자기공예는 근년 매우 활기를 되찾아 대소 공장이 전국에 10여개소. 서울 인근 광주·이천에 대부분이

    중앙일보

    1973.07.02 00:00

  • (3)분청사기 조화어문편병

    앞서 보인 분청사기 상감철채어문호가 보다 청자에 가까운 것임에 비하여 분단장의 은은한 맛과 분방한 야취를 한결 북돋워 보여주는 것은 조화 분청이다. 백토 물을 입힌 뒤 칼끝으로 간

    중앙일보

    1973.04.21 00:00

  • (2)분청사기상감철채어문호

    우리 나라의 역대 도자기 가운데 가장 호탕한 기품을 가진 것이 분청사기이다. 4백년 전의 것임에도 오늘의 인상파 그림이나 추상화가 무색할 정도로 현대적 감각이 물씬 난다. 애써 정

    중앙일보

    1973.04.20 00:00

  • 20년만에 밝혀진 대구 시립박물관 문화재 도난|"국보급 포함 천여 점이 없어졌다"

    6·25 직후 어수선한 톰을 타 대구에서 1천여 점의 중요화재가 도둑맞았던 이른바 「대구시립박물관소장 문화재도난사건이 20여 년만에 끈질기게 파고든 고 미술가 송원 이영효씨(60·

    중앙일보

    1973.04.05 00:00

  • 4월17일 국립 전물관서 개막될 한국 미술2000년전

    국립중앙박물관이 4월에 여는「한국미술 2천년전」에 출품될 역사적 미술품의 윤곽이 대체로 드러났다. 삼국시대 이래 고려·이조에 걸친 우리 나라의 숱한 고 미술품 가운데 이동이 가능한

    중앙일보

    1973.03.29 00:00

  • (292)우리 나라 화초육종의 현황과 문제

    현재의 재배화초는 모두가 토산종을 개량한 것이다. 처음에 관상을 위해서 품종이 개량됐고 부분적으로 향료의 목적으로 개량되었는데 오늘날 화훼의 품종은 3만종에 육박한다. 장미는 월동

    중앙일보

    1971.05.15 00:00

  • 반출 용역한 사유 문화재

    ▲서울 전형필(8점)=청자기린 유개향로(65호) 청자상감원앵문정병(66호) 청자상감 운학문호(68호) 훈민정음 1책(70호) 동국정운 2책(71호) 금동계미명 삼존불(72호) 금

    중앙일보

    1968.01.13 00:00

  • 문화재 도굴단-전국에 산재한 그들의 생태

    불국사 석가탑(일명 무영탑)은 도굴단(호리꾼)에 의해 파손됐다는 심증이 굳어가고 있다. 호리꾼이 국보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문화재 보호에 중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중앙일보

    1966.09.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