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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국의 대북 영향력 솔직히 존재라도 하나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국의 대북 영향력 솔직히 존재라도 하나

    중국은 과연 북한에 영향력이 있을까? 북한은 중국의 말을 들을까? [사진 셔터스톡] 국력을 비교해보면 북한이 중국의 눈치를 볼 것 같은데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중국의 어

    중앙일보

    2022.12.27 06:00

  • "바람처럼 사라지시라" 지하공작원 용어로 강연 끝내

    "바람처럼 사라지시라" 지하공작원 용어로 강연 끝내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왼쪽 둘째)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마

    중앙일보

    2013.09.02 02:30

  • (4644)내가 치른 북한숙청(26)|강상호|남도당파 제거(21)

    나는 연해주에서 공청간부시절 시베리아 형무소의 내부구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예심처가 관리하는 내무성 지하감방의 구조도 시베리아 형무소와 거의 비슷했다. 사방이 두꺼운 벽돌로

    중앙일보

    1993.07.05 00:00

  • (4643)|내가 치른 북한 숙청(25)|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로당 파 제거(20)

    남로당 파 소속 당·정 간부들과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조사가 거의 마무리 돼 가던 53년8월부터 남로당 파 소속 하부조직원들에 대한 검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로당 파 소속 최

    중앙일보

    1993.06.28 00:00

  • (4642)내가 치른 북한숙청(24)|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로당 파 제거(19)

    중량급 월북 예술인들이 차례로 구금돼 조사 받는 동안 이들의 가족들은 평양시내 변방에 있는 일제시대의 기업 소 건물 등에 분산 수용돼 있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의 대기 상태였다.

    중앙일보

    1993.06.21 00:00

  • (4639)내가 치른 북한 숙정(21)|저내무성부상 강상호

    시인 임화에 이어 이태준·김남천·이원조 등 문인그룹과 작곡가 김순남·연극인 황철 등 월북 예술인들이 무더기로 검거돼 조사를 받았다. 「문화혁명」식으로 소부르좌 사상과의 투쟁이라는

    중앙일보

    1993.05.31 00:00

  • (4638)내가 치른 북한숙청|남로당 파 제거(15)|전 내무성 부상 강상호

    방학세가 내무상에 앉자마자 남로당 파 인사들에 대한 대숙청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부터 김일성 수상의「특별지시」에 따라 박헌영 부수상을 비롯, 남로당파 인사

    중앙일보

    1993.05.24 00:00

  • (4635)내가 치른 북한 숙청|남로당파 제거(12)|전 내무성부상 강상호

    남로당파 숙청이 있기 전까지는 소련파 뿐 아니라 남로당파·연안파·빨찌산파·국내파 등 각 파별 간부들도 끼리끼리 모여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갖고 생일과 결혼기념파티·야유회 등을 통

    중앙일보

    1993.05.03 00:00

  • (4634)내가 치른 북한 숙청-남노당파 제거(11)

    53년- 봄은 왔으나 평양은 정초부터 몰아친 숙청한파에서 깨어날 줄 모른채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김일성수상에게 충실한 열성당원들에 의해 주도된 이른바 「밑으로부터의 비판운동」이

    중앙일보

    1993.04.26 00:00

  • 4631호

    남노당파 간부들에 대한 검거 선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은 휴전협정이 거의 익어져 가고 있던 53년 1월 초순이었다. 그동안 평양 상공을 오락가락하던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예상

    중앙일보

    1993.04.06 00:00

  • (4628)내가 치른 북한 숙청

    51년 초여름이었다. 기석복이 찾아와 선전부장 박창옥을 비롯한 수상파 간부들이 은밀치 진행시키고 있는 박헌영파에 대한 염탐 동향을 알려주면서 자신도 감시대상에 올라있다며 자초지종을

    중앙일보

    1993.03.1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내가 치른 북한 숙청

    감시망 강화하며 「올가미」 준비 김일성 수상은 50년 12월 박헌수 부수상 겸 외무상(군사위원)에게 중장계급부여와 함께 인민군 총 정치국장을 겸임토록 했다. 개편된 인민군 총 정치

    중앙일보

    1993.03.08 00:00

  • (4625)제89화 내가 치른 북한 숙청(7)

    (2) 「소련대사관 사건」이후 정국분위기는 급전직하로 냉각돼 갔다. 이 사건으로 그 동안 수면아래 잠복해 있던 「수상파(김일성 파)와 남로당파(박헌영 파)간의 암투」가 수면위로 부

    중앙일보

    1993.02.22 00:00

  • (4623)내가 치른 북한 숙청(5)전 내무성부상 강상호|허가이 암살

    내각 간부학교 교장시절인 51년 10월 초순이었다. 수상 실에서 느닷없이『전쟁으로 약화된 내각간부들의 교육을 강화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나는 간부들과 밤을 새워 내각간부, 특히

    중앙일보

    1993.02.08 00:00

  •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88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공산당서 “박헌영 밀어내기”/여운형에 신당맡길 움직임… 파벌알력 심각 서울에 도착하여 해방일보 편집국 아지

    중앙일보

    1990.04.02 00:00

  • 「주체사상」은 「개인숭배」와 표리관계

    이론적으로 말하면 공산주의에 있어서 사상과 이론은 객관적 타당성 보다 당파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원칙이 통용되고 있다. 김일성 주체사상도 바로 그런 각도에서 보아야 한

    중앙일보

    1988.09.10 00:00

  • (47)제자=김홍일|김성주의 기반구축

    「로마넨코」사령부가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위장한 이후 소련군은 김성주를 앞세운 공산정권을 수립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소군 장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김성주를 「카렌스키·워」라고

    중앙일보

    1974.08.05 00:00

  • (38)제자=김홍일-6사장 김일성의 죽음

    보천보 습격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 북한의 김성주와는 딴사람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혜산사건의 취조 책임자였던 시원경부의 말처

    중앙일보

    1974.07.08 00:00

  • (854)|내가 아는 박헌영(173)-박헌영의 체포

    임화·이강국·이승엽 등이 체포된 후에도 박헌영은 정식으로 체포당하지 않고 얼마간 자택에 연금 당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평양에서는 박헌영은 『체포 못한다』, 또는 『체포 안 한다』

    중앙일보

    1973.09.21 00:00

  • (841)|내가 아는 박헌영(160)|박갑동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이른바 북한노동당의 무력통일기도는 한국국민의 완강한 항전과 「유엔」군의 개입에 의하여 완전히 파탄되고 말았다. 한국국민은 기습을 당하여 한때 수도 서울시를

    중앙일보

    1973.09.06 00:00

  • 북한 22년|인물중심의 정치변천사-한재덕(공산권문제연구소소장)

    『해방된 지 20년이 넘는다. 그러니 남북이 양단된 지도 20년이 넘는다. 속언대로 하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세월이다. 그러나 그사이 무엇이 변했는가? 물론 여러 가지 변한

    중앙일보

    1967.08.1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