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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일제침략 수괴 조선총독·통감 10명…아베 지역구 출신이 4명
올해 8·15로 광복을 맞은 지 74년이 된다. 그런데도 일제 통치 35년의 상처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현실 정치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일제가 1910년부터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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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성공 위해 새로운 법 제정 절실”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회장 전상직)가 1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지하 1층 회의실에서 주민자치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이번 콜로키움은 미군정시대의 일본 민주화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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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앞에, 만철의 불편한 진실이 버티고 있다
━ [월간중앙] 박보균의 현장속으로 - 역사의 창고 ‘만철(남만주 철도)’을 찾아서 '만철'과 만주국 이야기, 22,000자 대르포손기정·나혜석이 탔던 유라시아 철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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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실패 희생양 삼아 일벌백계·토사구팽 다목적 포석
김일성, 박헌영, 허헌이 1948년 4월 평양의 남북연석회의장 정원에서 환담하는 모습(왼쪽부터). [중앙포토] 지금으로부터 꼭 63년 전인 1953년 8월 7일, 주요 통신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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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병·순사 충돌…군부·내무성 맞서자 일왕 개입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연금돼 있던 서안 화청지 오간청.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서려 있던 이곳이 중국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장소가 되었다. [사진가 권태균]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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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병·순사 충돌…군부·내무성 맞서자 일왕 개입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연금돼 있던 서안 화청지 오간청.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서려 있던 이곳이 중국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장소가 되었다. [사진가 권태균]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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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 소련으로 강제 연행됐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이 소련으로 강제 연행됐다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최근 비밀 해제된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이라는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정전협정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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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1949. 1. 06 2차대전시 일제에 의해 강제 징모되었던 한국인 출신 포로병 3,182명, 소련으로부터 귀환 1949. 1. 12 박헌영 외무상, 북한 주재 소련 특명 전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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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부상
"북한정권 초기 10년간의 경험을 모은 회고록을 서울에서 발간하고 통일조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1996년 5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외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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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金日成.朴憲永입장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6월29일 박헌영(朴憲永)은 『남반부 전체의 완전 해방은 오직 시간문제』라고 선언하고 『』남반부 인민들이 인민군과 자기들의 최후 승리를 위하여 이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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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한달前에 파악 金日成이대비명령 내렸다
그동안 미군의 완전한 기습작전으로 알려졌던 인천상륙작전을 김일성(金日成)이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했으나유엔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후퇴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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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6.25전쟁중 작성된 북한내부의 군사명령서 전모가 처음 밝혀지게 됐다.최근 소련및 중국 자료의 공개로 6.25전쟁에 관한새로운 사실들이 상당 부분 드러났지만,그 진실이 완전히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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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남로당파 제거 30.
金日成수상에게 朴憲永의 사형선고에 따른 대책을 보고하고 돌아온 내무상 方學世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간부회의를 진행했다. 『수상동지께서도 재판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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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남로당파 제거 29.
朴憲永의 최후진술을 듣고 있던 재판장 崔庸健이 朴憲永과 일문일답을 시작했다. ▲동무는 미국의 스파이활동을 대체로 시인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서 누구와 연락을 했고 어떤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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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로당파 제거
느닷없이 朴憲永이 안경을 던지는 바람에 재판정 분위기는 더욱무거워졌다. 호송병들이 시멘트바닥에서 박살난 안경알을 줍는 사이 방청석의일부 고위간부들이『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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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0)| 내가 치른 북한 숙청 (32)|전 내무부 부상 강상호|남로당파 제거 (27)
소련 조사단이 돌아간 직후 『박헌영 사건 조사를 속히 끝내 공개 재판에 회부하라』는 김일성 수상의 지시가 떨어져 내무성 예심처는 초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 시일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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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9)내가 치른 북한숙청(31)|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로당 파 제거(26)
다음날 김일성 수상은 조사단을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 아침을 함께 하며 회담을 계속했다. 수상이 외국인을 별장으로 초대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전날 밤 회담중 일방적으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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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8)제89화 내가 치른 북한숙청(30)|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노당파 제거(25)
조사단은 김일성 수상이 나타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소련말로 『수상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하는 등 국가수반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갖추었다. 김일성 수상도 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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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제89화 내가 치른 북한숙청(29) 전 내무성부상 강상호
(24) 53년말께였다. 주광무 예심처장실에서 느닷없이 큰 소리가 들렸다. 주광무가 박헌영 부수상을 조사하면서 내뱉은 협박성 고함으로 들렸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나하고 그 방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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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6)제89화 내가 치른 북한 숙청-남로당파 제거(23)
노동당 중앙 위원회 전원회의가 당사자인 박헌영 부수상이 불참한 가운데 출당 조치와 함께 재판에 회부키로 결정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내무성은 이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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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3)|내가 치른 북한 숙청(25)|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로당 파 제거(20)
남로당 파 소속 당·정 간부들과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조사가 거의 마무리 돼 가던 53년8월부터 남로당 파 소속 하부조직원들에 대한 검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로당 파 소속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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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치른 북한숙청(23)|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로당파 제거(18)
내무성「특명반」은 이태준 선생을 연행하기 전 이미 그의 월북이후 동향과 작품 성향을 면밀히 분석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조사의 초점을 남로당파의 지도자 박헌영을 지지한 분파주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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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9)내가 치른 북한 숙정(21)|저내무성부상 강상호
시인 임화에 이어 이태준·김남천·이원조 등 문인그룹과 작곡가 김순남·연극인 황철 등 월북 예술인들이 무더기로 검거돼 조사를 받았다. 「문화혁명」식으로 소부르좌 사상과의 투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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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8)내가 치른 북한숙청|남로당 파 제거(15)|전 내무성 부상 강상호
방학세가 내무상에 앉자마자 남로당 파 인사들에 대한 대숙청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부터 김일성 수상의「특별지시」에 따라 박헌영 부수상을 비롯, 남로당파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