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생명공학현장] 유전자지도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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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속에서 세포 또는 생명체를 시뮬레이션으로 재구성해 생명의 신비를 풀어내는 `실리콘 생물학(Biology in Silicon)'' 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 뇌신경기능유전학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진혜민(48) 박사는현대 생명과학의 가장 큰 특징이 분자생물학과 정보과학기술의 결합에 있다고 설명했다.

20세기들어 초정밀 전자현미경의 등장으로 생물학은 그 영역을 염색체의 구조뿐 아니라 분자의 구조 마저 파악할 수 있는 분자생물학으로 확대했고 기계.전자공학의 발전으로 한 번에 수백 개의 분자구조를 24시간 쉬지 않고 분석할 수 있는 전자동 물질분석기가 개발돼 대단위 생명현상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생산된 무수한 생물정보를 컴퓨터를 이용해 분석함으로써 인간 뿐 아니라 자연계에 존재하는 전체 생명체의 기본원리가 속속 발견됐고 그 덕분에 생명현상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인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matics. 생물정보학)가 생겨났다.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유전정보센터(NCBI)의 유전자은행(GenBank)에는 현재10의 10제곱에 이르는 염기서열 데이터가 저장돼 있고 이같은 데이터의 양은 매년배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정보량은 신문지를 200㎞ 이상 높이로 쌓아 놓은 것과 맞먹는 엄청난 분량이다.

한 사람의 게놈에 들어 있는 염기쌍 30억 개를 초당 하나씩 읽는 데만도 100년이 걸릴 정도로 유전 정보는 방대하다.

유전자 발현 분석, 단백질 구조 및 기능 분석, 단백질 상호작용 분석 등으로 이어지는 생명과학의 눈부신 진보는 이 유전자은행에 또다시 천문학적인 데이터들을 쏟아놓게 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생물정보의 바다'' 속에서 과학자들이 익사하지 않고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등대와 같은 존재가 바로 생물정보학이다.

미국의 생명공학 벤처 셀레라 제노믹스가 NIH의 주도 아래 10년 간 진행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9개월만에 따라 잡으면서 단기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설 수있었던 비결은 `샷건''이라는 새로운 염기서열 분석방식과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생물정보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샷건 방식은 한 인간의 DNA를 분쇄기에 돌려 무작위로 자른 다음에 이 DNA 조각을 10배 이상 증폭시켜 무조건 염기서열을 읽은 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그림 조각맞추듯이 서열을 끼워 맞추는 방식을 말한다.

셀레라는 모회사인 퍼킨 앨머(PE)사가 만든 자동 염기서열 분석기 `프리즘 3700''300대를 총동원해 염기를 분석하고 이 정보를 슈퍼컴퓨터에 저장한 뒤 컴퓨터 연산으로 염기서열을 재조합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염기 30억 쌍의 10배에 해당하는 300억 쌍의 염기를 분석한뒤 이들 염기의 서열을 컴퓨터를 통해 다시 조합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생물정보를 어떻게 종합정리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를 통해 생명과학 연구에 유용한 지식을 이끌어내는 정보분석기술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생물정보학의 목표다.

오늘날의 생물정보학은 게놈 해독에서 유전자 위치 예측, 3차원 컴퓨터 영상 솔루션을 통한 생명현상 시뮬레이션, 신약.신물질 등 생물공학제품 개발에 필요한 분석 도구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하드웨어 회사들의 참여폭도 늘어나고 있다.

컴팩사는 셀레라가 인간 게놈을 해독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컴팩 알파 프로세서를 탑재한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만들었다.

IBM은 지금까지 나온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500배 빠르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슈퍼 컴퓨터 40대를 합친 것보다 40배나 성능이 좋은 생명과학 전용슈퍼컴퓨터 `블루진''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획기적인 발전은 신약개발 기간과 비용의 단축은 물론 유전자 발현의 시간적, 공간적 특이성 예측, 자유로운 단백질 효소의 설계등을 가능하게 해 준다.

지금까지의 신약개발은 5천 개에서 1만 개의 후보 화합물을 수십만 번, 수백만번씩의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했기 때문에 평균 4억 달러의 비용을 투입하고도 수년에서 수십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생물정보학을 이용하면 이런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세계적 바이오벤처 밀레니엄 파머수티컬에 근무하는 홍석봉 박사는 "최근 신약 후보물질 도출에서 약효개선, 약리평가,임상실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생명정보 소프트웨어로 통합됐다"면서 "회사측은 2~3년 안에 수백만 달러의 비용절감이 가능해 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말했다.

홍 박사는 "인류는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의 결합체로 불리는 생물정보학의 탄생으로 한 생명체가 갖고 있는 DNA 전체 또는 단백질 전체를 분석할 수 있게 됐고 비로소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진입하게 됐다"면서 "한국도 생물정보 전문가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베데스다<美 메릴랜드주>=연합뉴스) 이창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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