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깨려 무작정 시작, 지금은 애청자 웃고 울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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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한아름방송에서 ‘시사토크 닷컴’ 등 2개의 코너를 담당하는 DJ 박경은(27)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송파구 보건지소 2층에는 아주 특별한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제작하고 만드는 방송이다. DJ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복잡해 보이는 각종 방송장비 조작까지 직접 한다. 게스트 섭외와 음악 선곡도 능숙하다. 매일 새롭고 다양한 코너로 애청자들을 웃고 울리는 ‘송파한아름방송’을 찾아갔다.

송파한아름방송은 국내 최초로 정신장애인이 만드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지난해 11월 개국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며 다양한 애청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송파구 정신보건센터 ‘늘품’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약 6개월간의 전문 미디어 교육과정을 거쳐 선보인 방송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방송에 뛰어들었다. 라디오를 진행한다는 내용에 흥미를 느꼈는데, 막상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방송에 빨려 들어가게 됐다.” ‘두 시의 데이트’와 ‘시사토크 닷컴’을 진행하는 ‘DJ 박경은(27)씨’는 방송을 통해 자신만의 재미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미디어교육 1기생이다. 방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녀가 처음 느낀 감정은 ‘어색하다’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라디오 방송 자체가 낯선 사람들의 사연을 읊어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전문적인 DJ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방송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실제 진행되는 라디오 방송 현장에 탐방을 가서 연습도 하고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고 말했다. 6개월 후 그녀는 진행 요령, 사연 취합, 방송장비 조작에 있어 여느 방송인 못지 않은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막상 방송을 진행해보니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DJ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 중 하나는 ‘시간’이다. 약속한 시간까지 대본을 제출해야 하고 섭외된 출연자들의 출연 시간을 조율하는 부분이다.

  ‘수요 초대석’을 진행하는 DJ 김영애(42) 씨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하면 방송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랐다”며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점차 시간을 조율하는 노하우가 생겼고, 책임감 향상은 물론 나 자신의 발전까지 이룰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됐다”고 회상했다.

정신 상담 코너 마련, 청취자 초대하기도

1년 가까이 방송이 진행된 만큼이나 사연도 많았다. 어느 날 장미꽃 한 다발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한 50대 애청자가 DJ들에게 힘을 내라며 보내온 것이다. 박씨는 “내가 과연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며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보람도 느꼈다”고 말했다.

  면도를 하다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점을 방송에서 밝힌 애청자도 있었다. 당시 사연을 받았던 김씨는 “우연히 면도를 하며 거울을 보다가, 남을 돕고 살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사회복지사로의 직업 전환을 결심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정신장애인의 문화적 욕구 충족이라는 테마로 출발한 한아름방송은,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상담도 들어준다. 올해 초 한 애청자가 ‘공포’에 대한 사연을 보내왔다. 과거 마약으로 인해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종종 공포를 느낀다. 사람들이 무서워 집으로 숨었는데 너무 집에만 있다 보니 공간에 대한 공포가 생기기도 한다”고 DJ들은 사연에 공감했다.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상담이다.

  앞으로 한아름방송은 지금처럼 꾸준히 활동할 예정이다. 방송참여를 통해 사회참여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지역주민의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 개선의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를 이어가는 것이다. 박씨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연 속으로 청취자들을 초대하는 것이 한아름방송의 특징”이라며 “많은 분들이 방송을 듣고 장애인들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방송을 들으려면
?
-세이캐스트(www.saycast.com)에서 ‘송파한아름방송국’ 검색?
-송파정신보건센터 홈페이지(www.spmind.or.kr)에서 ‘다시 듣기’ 가능

글=김록환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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