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메카 '저승사자 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 흰 토끼를 만난 소년 엘리스?
루이스 캐롤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는 주인공 엘리스가 우연히 흰 토끼를 쫓아가다가 이상한 나라에 빠져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저승사자 입니다'의 주인공도 흰 토끼와 만나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 그 흰 토끼는 바로 저승 사자였다.

◇ 신선한 소재의 매력
고3 수험생인 '츠츠미 마도카'는 어느 날 밤, 하얀 토끼 탈 쓴 수상한 사람과 한 노인이 싸우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노인은 이미 장례를 치룬 옆집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그 토끼는 자신이 저승사자 '나베시마'라고 밝힌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저승에는 죽은 이를 인도해가는 'GSG극락송영그룹'이란 회사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토끼 인형옷을 입은 것도 회사에서 이번 달을 '사랑스러움 강화기간'으로 정했기 때문 이라나? 유령까지 눈 앞에 있는 마당에 믿어야겠지만 어째 미덥지 못하다.

이 저승사자의 파트너 '유즈코'는 항상 실수투성이에 덜렁덜렁 대는 꼬마 여자아이다. 저승사자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건지… 이 만화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기존 음습하고 공포스런 저승사자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죽음이라는 무겁고 칙칙한 소재조차도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만화의 힘이 놀랍다.

카야(나베시마가 멋대로 붙인 츠츠미 마도카의 애칭)는 손녀딸을 보고 싶어하는 바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줘 극락으로 인도해 준다. 그 이후 카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승사자를 도와 영혼을 승천 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

언뜻 보면 카야는 나베시마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지만 육체를 영혼에 내주어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특이 체질 때문에 유령들의 사연에 따뜻하게 귀 기울인다. 더불어 정체불명의 저승사자들과의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 저승사자의 독특한 해석
'저승사자입니다'에서는 떠도는 영혼을 승천 시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기존 일본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퇴마사'의 이미지가 아니다. 동화적이고 가벼운 이 만화에는 진부함을 말소하는 파격이 존재한다.

저승이 하나의 회사이며 사랑스러움, 애로틱, 와일드 강화기간 따위를 정해 저승사자들이 비키니를 입은 토끼, 가짜 가슴을 넣은 바니 걸 때론 사자탈을 쓰고 등장하는 등 우스꽝스러운 설정으로 독자의 웃음을 자아낸다. 심오하진 않지만 신선한 소재, 선입견을 뒤집은 설정으로 성공한 만화이다.

또한 이 만화는 캐릭터 개발에 뛰어나 허황된 설정에도 불구하고, 인물에 대한 공감도 쉽다. 항상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투덜이 나베시마,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강화기간에도 인형 탈을 안 쓴 순댕이 유즈코, 무덤덤하지만 성실하고 따뜻한 성품의 주인공 카야. 마찬가지로 인간 아르바이트생이면서 나베시마를 좋아하는 힘센 아구마. 이들이 벌이는 저승행 시리즈는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강점이다.

◇ 작가는 누구?
이 만화는 '다나카 메카'의 작품으로 99년에 백천사에서 나온 첫 단행본이다. 작가는 신인이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 텔링에 능숙하다. 그래서 단편 3개만으로 완결된 이야기지만 다음 이야기를 또 기대하게 한다. 라이센스 번역본은 서울문화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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