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바보의 차이] 조선 시대 ‘돌머리’라 불렸던 김득신, 1만 번 이상 책 읽으며 과거시험 합격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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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박철원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천재와 바보가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질문 자체가 모순되고 바보 같은 질문이다. 두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노력한다면 당연히 천재가 이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면 천재성을 지니고도 제구실을 못한 사람은 부지기수고, 반대로 바보로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낸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의 한 사람이 조선 시대 ‘타고난 돌머리’로 알려진 김득신이란 인물이다. 조선시대에는 김득신이라는 인물이 둘이 있다. 한 명은 이 글의 주인공이고 다른 한 명은 조선 후기에 살았던 화가 김득신이다.

김득신(1604~1684)은 아버지가 감사를 역임한 명문가 출신임에도 머리가 지독히 나빴다. 열 살 나이에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의 수업 교재는 아동용으로 만든 내용이 짧고 쉬운『사략(史略)』이었다. 이 책을 득신은 3일이 지나도 단 한 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득신의 아버지 말을 빌리면, 그가 ‘타고난 돌머리’ 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책과 끈질기게 씨름했다. 결국, 그를 돌머리라고 업신여겼던 사람들도 김득신을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하게 됐다.

김득신의 삶과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이 중국 당나라의 천재 시인 두보다.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추앙받을 정도의 천재였지만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평생 방랑하며 불행한 노후를 보내다가 결국 59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우연히도 김득신은 59살에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다. 인간승리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김득신의 성공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가 있다.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는 득신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내린다. “60세까진 계속 과거에 응시해 보라”는 말이었다, 득신은 아버지의 말씀을 늘 마음속에 되새기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 책 읽기에 전념했다. 책의 내용을 전부 다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그는 67세에 이르기까지 36년 동안 책을 읽으며 1만 번 이상 읽은 36편의 글 이름과 횟수를 기록했다. 김득신의 서재 이름이 ‘억만재(億萬齋)’인 것도 이런 그의 독서 열정으로부터 생겨난 말이다.

현대사회는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근본 원칙을 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공부라도 원칙이 있다. 배운 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詩習之不亦說乎)’라고 했다. ‘익힌다’라는 말은 배운 내용을 되새기며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또 다른 의미다.

현대사회에서도 독서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김득신의 끈질긴 집념을 청소년 시절 독서와 공부에 적용한다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실행해 ‘김득신 효과’가 가정과 학교로 번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박철원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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