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절반 영업이익 급감 … 석달 새 1000억 적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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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earnings·기업 실적)의 공포’가 현실화됐다. 코스피 상장사 중 절반의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정유·화학 회사 중엔 석 달 만에 1000억원 넘게 영업적자를 내는 곳도 생겼다. 유럽 위기가 다시 악화하면서 중국 경기가 가라앉고 이게 한국 수출 기업에 타격을 줬다. 이런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하반기 이익 전망을 속속 낮추고 있다.

 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2분기 실적(연결재무제표기준)을 공시한 69개 상장사 중 절반(34개)이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줄었거나 적자로 돌아섰다. 5개 기업은 영업적자를 냈다. 석 달 만에 1000억원 넘는 적자를 낸 곳도 두 곳이나 됐다. S-Oil의 2분기 영업이익은 1612억원 적자였다. SK이노베이션도 105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03년 2분기 1439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이후 10년 만이다. 호남석유(-324억원), LG디스플레이(-255억원), 케이피케미칼(-67억)도 적자였다. 에너지·화학 기업은 지난해 일본 지진 영향 등으로 실적이 좋았다. 하지만 올해는 중국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유가가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형렬 교보증권 연구원은 “정유소재 기업은 연초 비싼 가격으로 산 석유로 제품을 만들었는데 유가가 떨어지니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9개 기업은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에 28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계속 적자였다가 흑자로 바뀌기는 했지만, 지난해 2분기(4468억원)와 비교하면 거의 10분의 1토막이다. 금호석유(-89%), OCI(-74%), 우리금융(-66%) 등도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실적이 예상에 크게 못 미치는 ‘어닝 쇼크’도 속출했다. LG유플러스의 2분기 영업이익은 31억원으로, 예상치 384억원을 한참 밑돌았다. 롱텀에볼루션(LTE) 시장 선점을 위해 마케팅비용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영업이익도 1조650억원으로 시장 예상보다 20% 적었다.

 반면 ‘전차군단’(삼성전자, 현대·기아차)은 2분기에도 독주를 계속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6조7241억원, 전 분기보다 15%,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79% 늘었다. 현대·기아차의 영업이익도 지난해보다 각각 17.6%, 18.1% 늘었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는 높은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늘려 이익을 극대화했다”며 “이들 기업은 이미 세계 경기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 기업의 하반기 이익 전망은 어둡다. 2분기 실적 발표 후 전문가들은 앞다퉈 향후 실적 예상치를 더 낮춘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2일 기준 국내 증권사 세 곳 이상이 분석하는 106개 상장사의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30조774억원, 두 달 전인 6월 초에 비해 3.97% 줄었다. 소재(-13.19%), 통신서비스(-12.68%), 에너지(-11.96%), 유통(-4.25%) 등의 예상 실적 낙폭이 크다. 4분기에는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대상 대신증권 연구원은 “3분기에는 에너지·조선 등 일부 업종이 바닥을 찍고 상승할 수 있지만 4분기에는 이런 업종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기댈 곳이 있다면 중국 경제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유럽과 미국이 해법을 내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실마리는 중국에서 풀릴 것”이라며 “중국의 고정 투자 감소세가 진정되고 있어 IT를 제외한 일부 업종의 실적이 호전될 조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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