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되나 … 고척동 돔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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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척동 야구장 공사장에서 지붕을 덮는 돔의 뼈대를 엮는 작업이 한창이다. 서울시가 2023억원을 들여 2만2258석 규모로 내년 12월 완공 계획이며 현재 공정률은 57%다. 국내 최초의 돔 구장이라 하지만 전철역이 멀고 서울 외곽에 있는 등 입지 조건이 나빠 활용 계획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성운 기자]

30일 오전 7시30분, 회색빛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뒤덮인 공사장은 드릴과 망치 소리로 요란했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 돔 야구장 공사장. 서울시가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국내 최초의 돔구장 건설 현장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콘크리트로 외부 형체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뼈대가 얼기설기 엮어진 돔은 반원인 채였다. 시공업체 관계자는 “공정률이 57%로 내년 말 완공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불볕더위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2층에서 벽돌이 든 수레를 밀던 인부가 숨을 몰아쉬었다.

 폭염에도 공사는 진행 중이지만 문제는 공사 후다. 서울이 연고인 3개 프로구단들이 야구장 위치 때문에 관객 모집이 어렵다며 홈 구장 이전을 모두 거부하면서 사업 주체인 서울시는 딜레마에 빠졌다. 프로야구단들의 외면으로 서울시는 시 예산이 투입된 공사비 2000억원은 물론 매년 예상되는 관리비용 60억∼80억원도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접근성이 어떻기에 그런 것일까. 30일 오전 서울의 중심부인 남산에서 자동차로 고척동 야구장까지 가봤다. 차가 많지 않은 오전 6시30분에 출발했지만 도착한 시간은 7시23분. 같은 시간 시내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잠실야구장보다 확실히 멀었다. 오전 8시쯤 되자 지하차도·고척교·2차로 도로 등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야구장 주변 도로는 녹색 신호에도 차들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막히기 시작했다. 고척동에서 광화문으로 출퇴근한다는 회사원 김종원(31)씨는 “이곳은 상습 정체지역이라 야구경기 시간을 맞추려면 오후 4시 전에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호선 구일역도 도보로 15분이나 떨어져 있다.

 고척동 돔구장이 이처럼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정밀한 수요 조사도 없이 사업을 추진해 세금만 낭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009년 2월 착공 당시 고척동 야구장은 관중석만 덮는 하프돔 형식이었다. 그러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으로 돔구장 건립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그해 9월 오세훈 시장이 나서 완전 돔구장으로 결정했다. 예산도 800억원 늘어났다.

 3개 구단이 홈구장 이전에 반대하면서 서울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책 없이 두자니 2000억원의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테고, 대형 마트 등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자니 지역 상권의 반발이 우려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결국 서울시는 K팝 스타나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을 유치하겠다는 카드를 내놨다. 하지만 공연계나 야구계 모두 냉소적인 반응이다. 레이디 가가 등 유명 팝스타들의 내한공연을 주최한 현대카드 관계자는 “공연에 적합한 사운드가 나올지도 미지수다. 지리적 조건도 안 좋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출신 야구인 모임인 일구회 이재환 회장은 “야구장을 지어놓고 서울시가 지금 와서 다른 용도로 쓰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고교야구대회 등 아마 대회를 유치하고, 7~8월 장마철에는 프로구단 경기도 유치해 야구장의 본래 목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회 건설위원회 소속 서영진(민주당) 의원은 “고척동 돔구장은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인기영합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인 대표적 세금 낭비 사례”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정광현 체육진흥과장은 “구장 운영 방안에 대해 야구계와 이견이 있지만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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