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무대 오르는 정신과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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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이 오른 2001년 베르디 서거 1백주기 기념공연 '라 트라비아타' 출연진에는 유일한 아마추어 성악가가 끼어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유순형 (柳淳馨.57)
박사.

비록 단역인 '동네 노인' 으로 출연하고 있지만 열성만큼은 어느 프로 성악가 못지 않다.

"국립오페라단의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훌륭한 공연에 누가 될까 해서요. 하지만 출연키로 결정한 뒤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

그는 연세대 종교음악과에 다니던 누나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성악의 매력에 빠져들었으나 부모의 뜻에 따라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독교 서클에 들어가 음대 친구들에게 발성법을 배우며 여러 무대에 섰다.

성악에 대한 열정은 병원을 개업한 뒤에도 이어져 국내 최고의 성악가로 손꼽히는 박수길 국립오페라단장과 박세원 서울대 교수 등에게 이탈리아 벨칸토 발성법을 사사받았다.

이후 1984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오라토리오 '메시아' 의 베이스 솔로로 일곱번이나 공연을 했고 96년에는 두 차례의 독창회도 했다. 99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백범 김구와 상해 임시정부' 에서 조소앙 역을 맡으며 오페라 무대에도 데뷔했다.

하지만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에 그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신과 치료에 노래가 사용됐다는 기록을 찾아낸 뒤 91년부터 음악을 정신과 치료에 도입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서 여는 '목요음악회' 가 바로 그것. 그와 친분이 있는 음악가들도 자원봉사 형식으로 무대에 섰다.

"처음에는 비웃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음악만큼 환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드물어요. 정신과 치료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

그는 "단역이라도 무대만 있다면 나갈 생각" 이라며 "정신질환자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여는 게 꿈" 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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