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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의원 되면 왜 뒷자리에 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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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정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19대 국회 본회의장의 의원 자리 배치가 9일 공개됐다. 이번에도 기존 관행을 그대로 답습했다. 의장석과 연단을 기준으로 중진들은 뒷자리, 초선들은 앞자리에 앉는 구조다.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의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모두 맨 뒷줄 자리를 차지했다. 최고위원 등 여야 지도부 역시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자리도 맨 뒷줄에 배치됐다. 국회 수뇌부인 이병석·박병석 부의장 자리도 맨 뒷줄에 있다. 반면 초·재선 의원들은 당직을 맡은 일부 인사를 제외하곤 대부분 앞자리에 배치됐다.

 지금껏 한국의 국회 문화를 감안하면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의회 경험이 적은 초선 의원들이 중진들보다 발언을 더 많이 한다. 법안 설명이나 찬반 토론, 5분 신상발언 등에 중진이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여야 간 몸싸움이라도 생기면 의장석 장악을 위한 돌격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게 젊고 힘있는 초선 의원들이다. 지도부는 뒤에서 지시를 내리면 된다. 수시로 회의장을 떠나기에도 뒷자리가 편하다. 그러니 초선들은 앞줄에, 중진들은 뒷줄에 앉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러나 이런 게 정말 합리적인 것일까.

 미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다. 하원 본회의장에는 지정석이 없다. 상원 본회의장은 우리 국회처럼 지정석이 있다. 그러나 의원 배치는 정반대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연단 바로 앞 첫 줄을 차지한다. 민주당의 해리 리드 원내대표와 리처드 더빈 부대표, 공화당의 미치 맥도넬 원내대표와 존 카일 부대표가 미국식 ‘로열석’의 주인공이다. 이뿐 아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공화당 거물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첫 줄에 자리가 있다. 2004년 대선 때 대통령 후보였던 민주당 존 케리 의원은 두 번째 줄에 앉는다.

 미 상원은 의회 경험이 많은 중진들이 앞자리에서 토론을 주도한다. 법안 설명에도 직접 나선다. 지난해 워싱턴 특파원 시절 상원 본회의장을 찾을 때마다 리드 의원과 매케인 의원의 육성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의 초선 의원들은 뒷자리에서 선배들의 의정활동을 보고 배우며 실력을 쌓아 점차 앞자리로 나아간다. 그러나 한국 국회의원들은 앞자리에서 시작해 경험이 쌓일수록 뒷자리로 꼭꼭 숨는다.

  미국 의회처럼 자리를 바꿀 수는 없다 쳐도 의정 경험이 많은 중진들이 진지한 토론에 앞장서는 문화는 받아들였으면 싶다. 중앙대 장훈(정치학) 교수는 국회 의석 배치에 대해 “ 권위주의적 요소가 그대로 남은 것”이라며 “구시대의 나쁜 유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