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히딩크호 출범 한달, 작지만 큰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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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한국축구의 부활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안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지 12일로 꼭 한달이 됐다.

히딩크 감독이 지난 달 12일 핌 베어백 코치와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과 함께 울산에서 실시된 대표팀 전지훈련에 정식 합류한 뒤 홍콩 칼스버그컵과 두바이 4개국축구대회 2차전까지 거둔 성적은 2승1무2패.

한국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한달간의 성적만로는 어느 누구도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히딩크가 한달 동안 보여준 대표팀의 운영과 선수 기용, 철저한 데이터분석을 통해 접근하는 자세에 대해 많은 축구인들은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울산 전지훈련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달 중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칼스버그컵 대회를 앞두고 기존 상비군 50명 이외의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히딩크 감독과 만났다.

그러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에 온지 1주일도 안 된 히딩크는 이미 상비군 이외 선수들의 장.단점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분석한 자료를 갖고 있었고 이용수 위원장은 새로운 정보를 줄 필요도 없이 히딩크의 주문대로 상비군 일부를 교체할 수 밖에 없었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 뒤 선수를 기용하는 히딩크의 팀 운영은 대표선수들의 마음가짐부터 바꾸어 놓았다.

`선수들은 어느 포지션을 맡더라도 이를 소화해 내야 한다'는 토털사커의 개념을 가진 히딩크는 자기 포지션 이외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선수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국내에서 뛰어난 기량을 갖췄다고 평가 받았던 공격수들도 수비 가담이 미흡하면 언제든지 교체됐고 팀플레이 없이 잔기술로 버티려하다가는 따가운 질책이 뒤따랐다.

이같은 변화는 훈련 뒤 갖는 선수들과의 공개미팅에서부터 시작된다.

히딩크는 특정 선수를 불러 개인면담을 하지 않는다.

전술토의는 모든 선수들이 모인 공개미팅에서 이뤄지고 선수 전원은 포지션을 불문하고 팀전술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교육받는다.

즉 공격 전문인 선수가 수비 포지션에 기용되더라도 전체적인 팀 전술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

대표팀의 한 선수는 "이전에도 대표팀에 선발됐었지만 언제 기용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운동장만 열심히 뛰다 돌아오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팀전술을 숙지하지 않으면 대표팀에서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습을 지켜보던 축구협회 관계자들도 "역대 대표팀에서 요즘처럼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며 입을 모은다.

축구인들은 대표팀이 3-5-2에서 4-4-2로 포메이션이 바뀌거나 어느 포지션에 누가 기용된다는 등의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이같은 내부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선 해설가는 "한국축구가 포메이션을 바꿨다고 해서 선진축구를 할 수 있다는 식의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선수들이 고정 관념을 깨고 토털사커라는 세계축구의 흐름이자 히딩크 감독의 방침을 소화해 내야만 발전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 최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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