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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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에서 죽음을 강조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실용적' 의미 이상이다. "만일 긍정적 마음으로 죽는다면 삶의 부정적 카르마에도 불구하고 다음 삶(來生)은 보다 개선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가는 순간의 주위 분위기가 몹시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회와 환생을 유독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수성을 이 책의 번역자 오진탁(한림대) 교수는 "삶과 죽음을 따로 보지 않는(生死不二) 불교의 기본 교리 위에, 평균 해발 4천m가 넘는 오지에서의 극한적 삶, 그리고 중국에 침략당한 역사적 체험이 작용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제식이 '축제' 일 수도 있었던 전통적 삶을 생각할 때, 더욱이 내생과 환생을 믿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밝은 사람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는' 우매함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명을 밝히지 않은 조계종의 한 승려는 "소승과 대승의 방편적 잣대를 가지고 티베트 불교를 봐선 안된다. 보살의 자비심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티베트 불교는 대승이다.

문란한 성(性)과 연관시키는 것은 심각한 오독" 이라며 "달라이라마만 해도 수십년간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다방면의 교학(敎學)공부를 통해 오늘의 바다와 같은, 그러나 평범한 도를 설파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를 수 있는데도 고도의 수행을 통해 환생해 속세의 중생을 구제하려는 원력을 주목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일시의 깨달음(頓悟頓修)' 이나 '점진적 깨달음(頓悟漸修)' 의 구분이 궁극적으로 중생에 대한 자비심의 발원이라는 원력 앞에 무색해질 수도 있으며, 공부(敎)와 깨달음(禪)을 일치시킨 달라이라마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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