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다저스 역사 (3) - 투수왕국의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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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리스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다저스에게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세번이나 MVP를 수상했던 포수 로이 캄파넬라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으며, 재키 로빈슨과 함께 피 위 리즈의 콤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담한 에버츠 필드에 익숙해 있던 다저스 타자들에게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허허벌판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국 다저스는 로스엔젤리스에 새둥지를 튼 1958년, 14년만에 리그 7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다저스는 이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타선에는 모리 윌스가 나타나 그라운드를 온통 휘젓고 다녔으며, 돈 드라이스데일과 샌디 쿠펙스의 좌우듀오는 투수왕국의 새역사를 열었다.

1962년은 다저스 역사상 최고의 해가 될 뻔 했다. 다저 스타디움이 개장했으며, 47년만에 시즌최다도루기록을 경신한 윌스(104개)는 MVP를 수상했다. 드라이스데일과 쿠펙스는 사이영상과 방어율 1위를 나눠가졌으며, '최초의 흑인선수' 로빈슨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것은 '숙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자이언츠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 시즌내내 선두를 달리던 다저스를 기어코 동률 1위로 끌어내렸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따냈다.

1963년은 쿠펙스를 위한 해였다. 쿠펙스는 다승(25), 방어율(1.88), 탈삼진(306)의 3관왕을 차지하며 사이영상과 내셔널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또한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두번의 완투승을 따내며 월드시리즈 MVP까지 석권했다.

이듬해 19승으로 주춤했던(?) 쿠펙스는 1965년과 1966년 각각 26승과 27승을 거뒀지만, 좌타자용으로 개발한 사이드암 커브가 화근이 되어 아까운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가장 화려했던 4년'동안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97승27패 1228탈삼진 방어율 1.86 사이영상 3회, MVP 1회, 월드시리즈 MVP 2회 수상.

1965년 다저스에게 앙갚음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저스는 9월초까지 자이언츠에 뒤져있었으나, 막판 13연승으로 극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도 쿠펙스의 7차전 완봉승으로 두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가져왔다.

1966년 다저스는 다시 내셔널리그를 제패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4연패로 물러섰다.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극심한 팔꿈치 통증을 느꼈던 쿠펙스는 2차전 6이닝 4실점(1자책점)으로 마지막 무대를 패전으로 장식했다.

쿠펙스의 은퇴 이후 다저스는 8위, 7위, 4위에 머무르며 화려했던 60년대를 마감했다.

60년대의 주인공은 쿠펙스와 드라이스데일이었지만, 이것은 명포수 존 로세보로, 마무리투수 론 페러노스키와 토미 데이비스가 이끈 타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피터 오말리 체체로 막을 연 70년대, 돈 서튼이 이끈 다저스의 마운드는 신시내티 '빅 레드 머신'과의 일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4편에서 계속)

◇ 다저스 역사 (1) - 개척자 다저스
◇ 다저스 역사 (2) - 브루클린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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