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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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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그의 아들에 대한 다양한 추측들이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위험한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 권력을 장악하지 못해 나라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 반대로 개혁과 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 등등. 당시 나는 중앙일보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김정은은 아버지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 갈 것이며 2012년 상반기 중에 미사일 또는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북한은 과연 미사일 실험을 했으며 2006년과 2009년 그랬던 것처럼 조만간 핵실험도 강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어떻게 상황에 대처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첫 느낌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우선 김정은은 아버지와는 크게 다른 심리적 특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게 됐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 방치된 상태로 성장했으며 아버지 김일성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로 1970년대 후반 그를 향한 개인숭배가 시작되기 전까지 크고 작은 심리적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노동당 고위층들이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기 전까지 김정일의 권력 승계에 반대했다. 이런 이유로 김정일은 자신감이 없고 불안정한 성격을 갖게 됐다. 김정일은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 직전까지 끌고 가는 전략적인 도발을 감행했지만 전쟁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잘 이해하는 듯했다.

 반대로 김정은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 시절 고난을 겪은 일이 없고 국내에서는 물론 스위스에서도 충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대중 앞에서 김정은은 마치 새로운 비디오 게임기를 가진 사춘기 소년처럼 으스대면서 탱크에 호기심을 보이고 성능을 묻곤 했다. 그는 권력에 취한 것처럼 보이며 전쟁의 실체는 모르는 듯하다. 김정은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직전 명목상의 지휘권을 부여 받아 ‘대장’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전쟁은 정말 쉬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둘째, 김정은은 20대 청년이 보이는 정서적 미숙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보다 쉽게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이 ‘무적’이라는 생각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대 청년과 중년 남자는 정서지수(EQ)가 크게 차이가 난다. 지혜와 사물의 맥락을 읽는 능력은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하룻밤 사이에 터득할 순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위협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비난 행위는 깊은 개인적 반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미숙한 경쟁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모두 김정은의 리더십이 김일성·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함을 말해준다. 북한의 기본 전략은 변하지 않았다.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와 맞서고, 제재와 압박을 무산시키기 위해 대화 복귀를 제안하고, 새로운 군사적 능력을 이용해 실질적 핵보유국임을 인정받는 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다. 김정일은 대립을 얼마나 끌고 가고 언제 후퇴해야 하며 다음 도발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김정은은 그런 능력이 없을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과 젊음,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맞상대하려는 성향 등은 모두 김정은이 위기 상황에서 오판하고 과잉대응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은 이런 지도자의 계산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려는 의지를 꺾기 위한 설득과 억제, 차단이 크게 중요해졌다. 김정은의 성격을 감안할 때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미·북, 남북 정상회담 같은 고위급 채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있은 직후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신호를 주는 일이다. 중국이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시점에서는 스웨덴 같은 제3자가 김정은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정치제도가 잘 확립돼 있고 시민사회가 활성화돼 있는 민주국가에서는 리더십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처럼 스탈린 방식의 개인숭배 체제하에서는 국가의 진로에 대한 지도자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과도하다. 김정은 변수가 중요하고 위험한 이유다.

마이클 그린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