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6번째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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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영화 '6번째날'은 간단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너무 추상적인 질문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복제라는 견지에서 보자면, 이는 황당하고 만화같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6번째날'은 최근 빠르게 진보하고 있는 생명복제, 나아가 인간복제 문제를 화두로 삼는다.

'007네버다이' 시리즈를 만든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은 이 영화를 SF액션에 이따금씩 보는 이의 뒷머리를 치는, 스릴러적인 기법을 가미해 만들어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토니 골드윈 주연작.

배경은 고도로 발달된 미래세계. 아담 깁슨은 전투기 조종사로 딸을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행크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의 삶이 한꺼번에 파멸한다. 자신의 생일날 집으로 돌아온 아담은 똑같은 생김새의 또다른 아담을 발견한다. 인간복제가 불법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복제한 것. 아담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인물 드러커의 소행임을 알아내고 그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아담은 드러커 역시 복제된 인간임을 알고 경악한다. 아담은 복제된 자신이 행복하게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며 질투심을 느끼고 멀리서 딸의 모습을 훔쳐보기도 한다. 과연, 그는 과거의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까.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은 "이 영화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조만간 우리와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하기사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 이후 2000년에 인간 유전자 코드의 완전 해독에 이르기까지 날로 성장해가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로 보건대, 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

'6번째날'에서 두드러진 것은 볼거리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사람을 빼닮은 인형, 홀로그램으로 실내를 둥둥 떠다니는 여성, 매끈한 외형의 미래식 헬리콥터 등은 관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에서 복제인간을 탄생시키는 과학센터의 물탱크. 거대한 양의 물이 채워져 있는 이 물탱크는 사뭇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배우들 연기도 무난하다. '대부' 시리즈의 로버트 듀발은 영화에서 인간복제의 키워드를 손에 쥔, 과학자를 연기한다. 영화는 자신이 복제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담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다른 이들 삶도 흘낏 엿본다. 로버트 듀발은 죽어가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연이어 복제하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아내는 스스로가 복제된 인간임을 알고, 더 이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지니고 살긴 싫으며 이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한다. 로버트 듀발은 묵묵히 눈물을 흘린다. 이 대목은 영화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첨단기술의 도덕적 문제를 신랄하게 파고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트루 라이즈'에 이르기까지 '6번째날'은 이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대작을 참조한다. 영화는 중반까지 다소 평이한 SF 액션으로 흐르다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힘을 발휘한다. 반전이 있고, 아담의 새로운 정체가 밝혀지면서 흥미를 배가시킨다.

'6번째날'엔 때로 진지한 부분도 있다. 복제문제를 둘러싸고 테러행각을 벌이는 집단의 존재와 (다소 코믹하게 보이기도 하는)
불사(不死)
의 몸이 된 복제인간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논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아쉽게도, 화려함에 가려 다소 빛을 발하고 있진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6번째날'은 액션과 스펙터클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다소 맥빠진 감이 없지 않다. 결말의 충격, 즉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다는 결론을 기다리기 위해선 꽤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묵묵히 CG로 창조된 그래픽 쇼를 지켜보는 수 밖에.

김의찬/영화평론가<nuage01@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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