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시청률 저조해도 장사는 짭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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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16부작)의 한 장면. 시청률은 평균 16.4%에 머물렀다.

지난 17일 막을 내린 ‘슬픈연가’(MBC)는 외주제작사가 방송사 ‘하청’을 받아 드라마를 만들던 관행을 깬 작품이다. 제작사가 블록버스터형 드라마를 만들고 방송사를 ‘골라’ 계약을 했다.
방송을 끝낸 요즘 ‘슬픈연가’제작사들(김종학 프로덕션·포이보스·두손엔터테인먼트)은 기분이 좋다.

평균 시청률 15.5%(AGB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결과)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방송사와의 수익배분 계약이 유리해지고, 수입원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비슷한 길을 걸어간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지난 1월 종영)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제작의 헤게모니가 방송사에서 외주제작사로 상당부분 옮겨가면서 생긴 결과다.

◆수익 배분비율 역전='슬픈연가' 제작사는 드라마 수출액 중 70%를 갖기로 MBC와 계약했다. 예전엔 30~40% 정도였다. 한 예로 김종학 프로덕션은 지난해 드라마 '풀하우스'(KBS2)를 히트시켰지만 해외 판권수익의 40%밖에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슬픈 연가'의 상황은 다르다. 현재 이 드라마의 수출실적은 일본.동남아 지역만 진행됐는데도 50억원대에 이른다. 비율상으로 제작사에 35억원이 떨어진다. 총 제작비(70억원)의 절반을 메울 수 있는 금액이다.


또 통상 방송사가 100% 갖고 갔던 '인터넷 다시보기(VOD)' 수익의 50%를 제작사 몫으로 돌리는 데도 성공했다. 여기에 방송사로부터 받는 제작비 지원액도 편당 1억3000만원으로 늘렸다. '풀하우스'는 9800만원이었다.

'러브스토리 …'제작사인 JS픽쳐스와 로고스 필름도 SBS와 DVD 판매 수익 배분 등을 놓고 막판 협상을 하고 있다. '제작비 지원 편당 1억원 이상, 해외 판권 수익 중 제작사 비율 70% 이상'으로 의견이 좁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총 제작비 35억원을 투자한 '러브스토리 …'는 대만에 10억원에 팔렸으며, 일본과도 협의 중이다.

◆다양해진 수익모델=먹거리도 다양해졌다. '슬픈연가' OST 관련 사업을 맡은 포이보스 김광수 대표는 "지난 1월 발매한 세 종류의 OST가 지금까지 10만장 정도 팔려 7억여원의 순수익을 거뒀다"며 "휴대폰 벨소리와 컬러링 수익도 2억~3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음반시장의 불황이 무색해지는 발언이다. 포이보스는 다음달 30일부터 후지TV를 통해 '슬픈연가'가 방영되는 일본 시장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미 OST와 뮤직비디오 일본내 판권을 팔면서 15억원의 계약금을 받았고, OST가 5만장 이상 팔릴 경우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김종학 프로덕션도 화보집과 캘린더 발매 등을 기획 중이다.

또 JS픽쳐스는 '러브스토리 …'로 책도 만들었다. 현재 일본.대만.중국에 도서 판권을 팔아 1억여원의 수익을 거뒀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상업화'가 빚는 부작용도 있다. '슬픈 연가'는 OST를 띄우려고 음악을 지나치게 강조해 극 전개가 느려졌다. 첫사랑.순애보 등 일본시장에서 먹히는 한류코드를 우려먹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러브스토리 …' 역시 드라마 배경이 미국보다는 한국이면 좋겠다는 아시아 시장의 반응을 좇아 미국 올로케이션 계획을 철회하는 바람에 완성도가 떨어졌다.

◆방송사.제작사 힘겨루기=그렇다고 드라마 제작사가 모두 돈방석에 앉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방송사로부터 드라마를 발주받아 만들고 있다. 부족한 제작비 지원을 간접광고 등으로 메우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하지만 추세는 '슬픈연가'처럼 자체기획.사전제작으로 고수익을 노리는 제작사가 느는 쪽이다. 역사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사전제작 방식으로 준비 중인 김종학 프로덕션 측은 "1년에 두세개 드라마는 사전제작으로 기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런 흐름이 100% 관철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방송사가 쉽사리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에이트픽스가 80억원을 들여 사전제작 방식으로 만든 무협드라마 '비천무'는 촬영이 끝난 지 넉달이 지나도록 방송사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방송가에서는 "제작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방송3사가 담합했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에이트픽스 송병준 대표는 "이미 홍콩.싱가폴.태국.베트남 등에 40억원대의 수출 계약을 했다"며 "저작권을 제작사가 100% 갖는 쪽으로 방송사와 계속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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