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기업은 누가 움직이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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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최고통치자는 대통령입니다. 회사로 치면 최고경영자나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즉 국가의 지배구조가 어떤지를 알려면 대통령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는가를 보면 돼요. 대부분의 일은 거느리고 있는 정부 부처에 맡기지만 나라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은 대통령이 결정해요.

그러나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은 아니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는 것은 다 아시죠. 좀더 효율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국민들이 대리인(代理人)인 대통령을 뽑은 거예요.

또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라 일을 잘 보는지 감시·감독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뽑고,최후의 감시 보루로 법원도 뒀어요.이처럼 입법·사법·행정 등 삼권분립 제도를 택한 것은 국민의 대리인들이 국민들을 위해 제대로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기업도 마찬가지에요.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듯 기업에선 최고경영자가 다스리고,국회의원이 대통령을 감시하듯 최고경영자가 제대로 일하는지 감시하는 이사회나 감사위원회 같은 제도가 있어요.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고 듣는 기업지배구조는 이런 기업의 경영·감시 체제에 관한 것입니다.지배라는 말은 ‘다스림’을 뜻해요.

즉 기업을 다스리는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느냐는 것이죠.

영어로는 코포리트 가브넌스(corporate governance)인데, 가브넌스 역시 ‘다스림’으로 번역돼요.정부란 뜻의 가븐먼트(government)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그렇다면 최고경영자는 누가 뽑을까요.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기업의 주인은 기업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株主)들이에요. 따라서 주주들이 경영진, 즉 이사(director)들을 먼저 선출하고 최고경영자인 대표이사는 이사들의 모임인 이사회에서 선출합니다. 또 주주는 최고경영자를 감시할 권한을 이사회에 맡겼어요.

만약 이사회가 최고경영자와 한통속이 돼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면 주주들이 이사를 바꾸면 됩니다. 감사나 감사위원회는 법원과 비슷해요.이처럼 기업을 다스리는 구조,즉 기업 지배구조를 파악하려면 누가 기업을 경영하는가,그리고 누가 경영자를 감시·감독하는가 하는 두가지 측면을 보면 됩니다.

다만 기업의 주인은 주식을 가진 주주(즉 그 회사에 투자한 사람)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대통령을 뽑을 때는 국민 한 사람,한 사람이 똑같이 한 표씩 갖지만 기업에서는 주식 한장이 한표예요.

따라서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이사와 대표이사 선임을 좌우하게 되고, 이때문에 정치는 ‘민주주의’지만 기업은 ‘주주(株主)주의’라고 해요.

나라를 잘못 운영하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고 심지어 혁명이 일어나듯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회장이나 사장 등 회사에서 가장 높은 최고경영자의 판단이 무엇보다 크게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현대그룹이 부실 덩어리인 현대투자신탁증권을 인수해 그 때문에 지금 현대증권 등 다른 계열사까지 외국 기업에 넘기려 하고 있지요. 삼성은 반도체 사업 진출은 아주 잘했지만, 자동차 사업에 잘못 진출해 큰 손실을 보면서 외국 기업에 팔았어요.

물론 최고경영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 자문을 구하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마지막 결정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그 결정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바뀌게 되니 최고경영자의 역할이야 말로 막중하다 할 수 있지요.

누가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지는 오래된,그러나 아직도 정답이 없는 논쟁입니다.미국은 주주가 뽑은 전문경영인이 경영한다고 해서 전문경영인 체제,우리나라는 대주주(오너)가 직접 경영을 한다고 해서 오너 체제 또는 소유경영자 체제라고 합니다.전문경영인이 경영할 경우에는 주주들이 뽑은 이사들이 감시·감독합니다.

소유경영자 체제는 최고경영자가 곧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최고경영자 감시권을 맡길 수가 없어요.대신 기업 외부에서 감시가 일어나요.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대표적입니다.빌려준 돈을 제 때 받으려면 최고경영자가 제대로 경영을 하고 있는지 감시할 수 밖엥요.독일에선 아예 은행 간부가 이사로 참여해 최고경영자를 감시합니다.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운용하는 투자신탁회사라든가 국민연금 등의 각종 연기금도 최고경영자를 감시해요.이들을 기관투자가라고 하는데 미국은 이들의 감시활동이 매우 활발해 기관투자가 자본주의 체제라는 말을 들을 정도예요.

이밖에 정부는 법률을 통해 기업의 불법행위가 없는지를 감독하고,소비자는 제품 구매나 소비자 운동을 통해 감시합니다.인수·합병(M&A=Merger and acquisitions)시장도 상당히 효과있는 감시 장치입니다.기업을 사거나 뺏을 수 있는 시장이 활발하다면 최고경영자는 늘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자칫하면 회사를 빼앗기기 때문이죠.

이런 기업 외부에서의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회사의 사정이 외부에 신속·정확하게 알려져야 합니다.회사가 장사를 어떻게 했는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하려고 하는지 등을 있는 그대로,그때 그때 알려야 외부 사람들이 그 회사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3년전 외환위기를 겪고난 뒤 이에 대한 여러 제도를 고쳤습니다. 기업의 회계 장부를 외부에서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든지, 회사의 중요 사항을 발표하는 공시를 제 때 하도록 한 것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감시·감독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기업은 이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데 최고경영자의 경영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약하면 제대로 일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주지 않고 자녀에게 매일 공부하라고 다그치면 역효과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따라서 소유경영자든 전문경영인이든 유능한 사람이 충분한 권한을 갖고 회사를 경영하되, 잘잘못은 은행과 인수·합병 시장 등 기업 외부에서 주로 따지는 게 가장 바람직한 지배구조일 거예요.

물론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고,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권한 행사에 걸맞는 책임을 지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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