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현 게이트] 국제금융 스캔들로 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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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코리아온라인(KOL)의 모회사인 홍콩 i리젠트그룹 짐 맬런 회장을 검찰에 수사의뢰함에 따라 진승현 MCI부회장의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의혹이 외국인 투자자가 결부된 국제 금융스캔들로 번질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陳씨와 i리젠트측의 주장이 상반되는 데다 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던 고창곤 전 리젠트증권 사장이 잠적한 상태여서 양측 주장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엇갈리는 陳씨와 i리젠트 주장=陳씨는 지난 8월 리젠트증권 주가조작 혐의로 금감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때부터 "i리젠트측이 나중에 주식을 되사주겠다고 해 리젠트증권 주식을 샀다" 며 "i리젠트측과 주고받은 e-메일을 갖고 있다" 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의 계속된 요구에도 이를 제출하지 않았던 陳씨는 KOL과 i리젠트측이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부분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자 역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i리젠트측은 "당시로선 陳씨의 의도와 실제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며 "피터 에버링턴 부회장이 e-메일을 보낸 것도 이런 차원" 이라는 설명이다.

◇ 리젠트증권의 지분 변동이 열쇠=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세조종이 이뤄진 시점은 지난해 10월 7일부터 11월 17일 사이.

이 기간 중 리젠트증권의 주가는 2천9백80원(당시 액면분할 전 1만4천9백원)에서 6천7백30원(액면가 5천원 기준 3만3천6백50원)으로 치솟았다.

당시 陳씨는 계열사를 동원, 리젠트증권 주식을 사들였지만 지난해 9월 말 이후 올 6월 말까지 i리젠트그룹의 리젠트증권 지분율은 계속 42.7%가 유지됐다.

이는 "우리가 경영권 안정을 위해 리젠트증권 지분을 늘릴 것으로 보고 陳씨가 주식을 먼저 매입해 되팔려한 것 같다" 는 i리젠트측 설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실제 i리젠트그룹과 특수관계인들이 리젠트증권 지분율을 높이기 시작한 것은 올 7월 이후로, 지난 16일 현재 73.1%로 높아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i리젠트측이 지주회사인 KOL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지분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성이 있었을 것" 이라며 "그러나 지난해 11월은 i리젠트측이 경수종금(현 리젠트종금) 인수를 위한 막바지 협상에 들어간 상태라 자금을 함부로 쓸 수 없었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陳씨의 힘을 빌려 리젠트증권 지분을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설사 i리젠트측이 陳씨에게 주식을 나중에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해도 주가조작까지 부탁했는지를 입증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국제 사건으로 번질까=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외국인 투자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i리젠트그룹은 외환위기를 맞은 어려운 시기에 앞장서서 외자도입을 추진한 공로가 있다" 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공정하고 신중한 조사를 해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陳씨와 高씨를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도 당시 맬런 회장의 수사의뢰 부분은 공개하지 못했다" 며 "이는 그가 외국인인데다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자칫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외교적인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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