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그만…" 잘나가던 신인왕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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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는 장래가 촉망되던 프로배구 신인왕이었다. 그러나 경기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수렁에 빠졌다. 코트에 다시 서는 일도 요원해졌다. 그는 박준범(24·1m98cm)이다.

 13일 한국배구연맹(KOVO)은 상벌위원회를 열고 경기 조작에 연루된 현역 선수 네 명을 영구 제명키로 했다. 추후 무혐의 판정이 나더라도 선수 신분을 회복할 수 없다고도 했다. 박준범은 대학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선수였다. 한양대 1학년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2007년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그해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컵에서는 세계랭킹 1위 브라질을 상대로 팀내 최다득점(11점)을 올렸다. 프로에 와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2010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KEPCO 유니폼을 입은 뒤 지난 시즌(2010~2011년) 신인왕을 차지했다. 올 시즌 박준범은 어깨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여전히 팀의 기대를 받는 주축 선수였다.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자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살림꾼이었다. 그러나 박준범은 이번 징계로 배구 인생을 접어야 할 위기에 빠졌다. 검찰은 지난 12일 박준범과 임시형(27)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박준범은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대전 집에 머물고 있다.

 무엇이 그를 경기 조작에 발을 담그도록 했을까. 이번 사건에는 박준범까지 KEPCO의 전·현직 선수 5명이 연루돼 있다. 이 중 박준범이 막내다. 이 때문에 박준범이 선배들의 권유 또는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가담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 해도 박준범의 혐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배구계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건, 단순 가담을 했건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KOVO의 징계에 대해 일부 배구인들은 ‘과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구단 관계자는 “틀림없이 잘못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다”면서도 “아직 앞길이 창창한 선수의 실수에 너무 가혹한 처분을 내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 배구인도 “연맹이 강경한 대응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꼬리 자르기’로 비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준범의 아버지 박형용(50)씨는 “배구인으로서 누를 끼친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이다”라며 “아들이 잘못했지만 제가 죄를 지은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1983년 현대차서비스(현대캐피탈 전신) 창단 멤버로 팀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던 왼손잡이 공격수 출신이다.

 박씨는 아들의 징계에 대해서는 수용할 뜻을 밝혔다. 그는 “당사자의 부모로서 징계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아들에게도 ‘벌을 달게 받으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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