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 … 미군, 홍길동 스타일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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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이 26일 2013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던 중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지난 24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중부 하라드히어 인근 해적 근거지.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 소속 24명의 요원이 헬기를 타고 낙하했다. 지난해 5월 파키스탄에 들어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부대다. 이들은 해적들에게 3개월간 구금돼있던 미국인과 덴마크인 각 1명을 구출하는 작전에 들어갔다. 출발지는 미 본토가 아닌 인근 지부티의 레모니어 미군기지였다. 구출작전은 싱겁게 끝났다. 해적 9명은 사살됐고 네이비실 요원은 부상도 입지 않고 인질 2명을 데리고 레모니어 기지로 돌아왔다. 외신을 종합한 당시 상황이다. 침투 전의 해적 움직임은 무인정찰기(드론)가 감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미군은 장비와 현장 작전요원, 기지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여 있다. 애플의 i클라우드와 흡사하다.

 26일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이 2013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을 공개하면서 밝힌 미군의 미래상은 이 작전으로 압축된다. 경량·기동·첨단군이다. 패네타는 2013년도 국방예산으로 6130억 달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전년보다 9% 줄어든 규모다. 국방예산 감축은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처음이다. 패네타는 “군은 보다 작아지지만(smaller and leaner), 재빠르고 유연하며 신속 배치가 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앞선 최첨단 군(cutting-edge force)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육군(56만2000명)을 49만 명으로 줄이고, F-35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전략무기 도입을 축소하지만 군사기술 혁명을 통해 세계 제1의 전투력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패네타는 지상군과 달리 특수전 병력과 드론의 작전은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관리는 “특수전 병력(6만3750명)은 2015년까지 10%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월스트리트 저널). 해외 군사 기지 활용도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군 수뇌부가 터키와 요르단에 새 특수작전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론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는 특수부대가 전 세계의 미군 기지를 떠다니면서 작전하는 전략이다. 기지도 냉전시대의 요새(要塞)가 아닌 특수전 병력이 오가는 정거장으로 바뀐다. 펜타곤이 군사 기지를 수련 잎(Lily pad)으로 부르는 이유다. 개구리가 물 위의 수련 잎을 껑충껑충 뛰면서 옮겨 다니는 것과 같은 기지의 구축이다. 특수전 부대는 이 기지를 발판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21세기 홍길동군이라 할 수 있다.

 패네타 장관은 한국과 중동에서 상당한(significant) 지상군을 보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을 현재(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후퇴한 발언으로 보여 향후 미군 재배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일각에선 아시아 주둔 미군의 순환 배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패네타 장관이 “(군사 개편 작업은 이제)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고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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