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에너지 구조 뜯어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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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오일쇼크를 헤쳐나갈 수 있는 대책은 제한돼 있다. 달러를 싸들고 가서 원유를 들여오거나, 아니면 절약해 쓰는 수밖에 없다.

최선의 방안은 가정이든 기업이든 기름을 적게 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는 가정이든 공장이든 에너지를 펑펑 써왔다.

특히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산업분야에서는 '에너지 낭비형' 에 가까운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대책의 초점이 에너지절약형 산업구조 구축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은 이 점에서 비롯된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에서 1차금속.비금속.석유화학 등 설비 위주의 장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4%로 일본(61%).미국(59%)보다 훨씬 높다.

자연히 반도체 수출액(1백88억달러)보다 더 많은 비용을 에너지 수입(연간 2백26억달러, 전체 수입액의 19% 상당)에 지출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1억4천3백TOE(석유환산톤). 이 가운데 산업용이 무려 59%를 차지했고 수송용이 20%, 가정.상업용.기타가 24%였다.

이에 비해 다른 나라의 산업용 : 수송용 : 가정.산업용은 일본은 43:27:30, 미국은 26:40:34, 프랑스는 30:30:40이다.

문제는 산업용 에너지의 비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산업용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수출상품의 원가경쟁력을 위해 산업용 에너지의 경우 일반용 에너지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부과하거나 낮은 요금을 책정하는 저가정책을 써왔다.

벙커C유나 중유의 경우 세금이 거의 붙지 않는다.

경유도 ℓ당 51.7센트로 일본(81센트).영국(1백9센트)보다 훨씬 싸며 산업용 전력요금도 일본 가격의 3분의1, 영국 가격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사실 에너지 절약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고, 관심이 있어도 초기투자비용이 큰 에너지절약설비는 경영의 우선순위에서 곧잘 밀리게 마련이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현장을 다녀보면 단열테이프만 파이프에 몇번 감아도 엄청난 에너지절약이 될 것을 대기업공장에서도 그냥 방치하는 것을 본다" 면서 "전문가가 없는 것은 물론 그런 시설 해서 몇푼이나 아끼느냐고 말하는 관리자들이 있을 정도로 인식이 부족한 실정"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7월까지 국내 산업체의 에너지 소비증가율은 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국내 수송부분의 증가율(4.7%)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런 결과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우리 경제가 성장률(GDP)을 1%포인트 올리려면 에너지는 1.22%포인트를 더 투입(에너지탄성치)해야 한다.

일본.대만.미국 등은 모두 1%포인트 이하로서 적은 에너지비용으로 총생산을 늘릴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유지철 에너지전략연구단장은 "언제까지나 보조금 성격의 저유가정책으로 에너지 낭비적인 산업구조를 이끌고 갈 수는 없다" 면서 "에너지도 이제는 시장.가격기능을 회복시켜 기업으로 하여금 에너지절약을 통한 경쟁력 향상에 눈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정부가 15일 산업용 전력에 대해 원가수준으로 가격을 다소 인상하고, 기업들이 에너지절약시설 투자를 확대하도록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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