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가족"…이 나라에선 낡을수록 고가주택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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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기자]

“늘 서재에서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셨던 남편을 떠올리면서 사별한지 10년이 지나도 그 공간을 고스란히 놔둔 부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자녀들이 결혼해서 출가해도 자녀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집이 많더라구요. 손자ㆍ손녀들이 와서 자신의 부모가 어린 시절 쓰던 방을 보면 소통이 더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30년쯤 된 아파트가 5년 된 새 아파트보다 값이 더 비싸요. 집 주변에 우거진 가로수부터 집 앞의 화단까지 오랜 시간 가꾸어진 것들이 집의 가치에 포함되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된 것일수록 더 선호 한답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게 당연해진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에서 주택정책과 주거문화 등을 연구한 박현옥 교수(청운대 공간디자인학과)가 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거 철학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데다가 평소 지중해 주택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박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주거 및 실내디자인 전공으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이스라엘 유학길에 나섰다.

1997년 이스라엘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박교수는 이스라엘에서 주거 및 디자인 분야를 전공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스라엘 공과대학에 한국인 유학생은 1~2명에 불과했고, 주변 아랍국가와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잦은 이스라엘 땅에서 한국인이 서투른 히브리어로 현지 주민과 소통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박 교수는 주민들에게 직접 설문지도 돌리고 현지인의 집을 직접 방문해가며 이스라엘 주거문화 연구에 나섰다.

“주거공간에 자기 삶의 히스토리가 하나하나 녹아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 삶의 기본을 이루는 의식주 중의 하나인 집, 주거공간 자체가 곧 자신을 표현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가 주거 실내디자인을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80년대만 해도 미적인 측면 만이 강조돼 왔던 터라 ‘과연 모든 사람을 위한 학문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품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주거문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주거공간에 대한 연구야말로 그가 평생 가져야 할 화두이자 평생 연구해야 할 학문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셈.

이주인구 정착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직접 주거단지 건설ㆍ 관리까지

박 교수가 이스라엘 유학 후 발표한 ‘이스라엘 공동주택의 관리실태에 관한 연구’ 논문을 살펴보면 그의 연구가 잘 드러나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주변국가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주거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

이주인구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가 주거단지 건설에 나섰고 재정 지원부터 관리까지 담당했다.

부엌이나 욕실도 없이 방이 3칸이거나 또는 그보다 작은 소형 주택 위주로 공급되다 보니 주거수준도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정부가 건설한 주거단지는 1970년대 말 시작된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었다.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70년대 이후 공급되는 주택의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계속해서 주택공급을 후원하고 주택전문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주도하에 거주자가 직접 참여하는 주택의 물리적인 질의 향상과 규모 확대, 근린시설의 확충 등이 이뤄질 수 있었으며 거주자의 참여에 의한 자치적 관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20가구 이하의 주택에서도 자치적인 관리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민이 직접 수목과 정원을 가꾸기도 하고, 주민 중에 관리인이 선임되는데 일종의 투잡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죠."

"정부에서도 관리를 하고 있지만 집이 나만의 공간인 동시에 공공의 공간이란 인식이 심어져 있어서 주택 관리에 세심한 편입니다.”

▲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리모델링 된 예후다 거리의 아파트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통한 리모델링 사례 배워야

하지만 이러한 박 교수의 연구도 우리나라에서 적용되기는 쉽지가 않다. 주택정책이나 인식, 주거철학 등이 워낙 다르기 때문. 

이스라엘에서는 토지가 국가 소유인 데다가 대부분의 건물을 돌로 짓고 있어서 수명도 긴 편이다. 아파트 일색인 한국의 주거문화와는 태생이 다르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리모델링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박 교수는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 대상에 불과하죠. 재건축ㆍ재개발로 낡은 아파트를 헐어 버리면서 울창한 수목과 그간 가꾸어진 주변의 것들도 함께 사라지는데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돌로 건축된 주택의 외관을 그대로 복원하면서 실내공간을 확장하거나 외부공간 리모델링을 진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도심재생 프로젝트와 주거문화 등이 유럽에서는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주거철학이 깃든 이스라엘의 주택정책과 주거문화. 박 교수의 바람대로 우리나라에서도 뿌리내리게 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 리모델링으로 만들어낸 공유부분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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