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남’ 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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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찬호가 애리조나 캠프에서 동료들과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오렌지색 한화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이게 2012년의 박찬호(39)다. 18년 만에 한국야구로 돌아온 그는 한화에서 최고참인 동시에 새내기다. 적응할 게 많지만 무엇이든 혼자 하지는 않는다. 한참 어린 후배들과도 끝없이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대선배로서의 역할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박찬호는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치르는 전지훈련에서 ‘개그맨’이자 ‘수다쟁이’를 자청하고 있다.

 26일(한국시간) 중앙일보와 만난 박찬호는 조직문화 적응에 대해 “팀에 체계만 있으면 된다. 선후배 사이 위계는 있되, 팀원으로서는 모두 똑같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거 안 지킨다고 경찰 출동 안 합니다. 쇠고랑 안 차요”라고 KBS 개그콘서트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유행어를 따라했다.

 박찬호는 수시로 개그 유행어를 툭툭 터뜨린다. 박찬호와 함께 방을 쓰는 공주고 후배 안승민(21)은 “개그 욕심을 많이 내신다. 숙소에서도 개그 유행어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이에 박찬호는 “썰렁한 개그 한다고 후배들이 왕따시키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웃을 때 서로 잘 뭉치지 않나. 난 그게 팀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사생활이 힘들 수 있고 컨디션이 나쁠 수 있다. 그렇다고 인상을 쓰고 있으면 동료들이 신경을 쓰게 된다.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 동료들과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팀이 강해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박찬호의 한국 야구문화 적응 방식이기도 하다. 한양대 재학 중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박찬호는 팀과 똑같은 스케줄로 훈련하고 함께 숙식하는 한국식 훈련을 치르는 게 18년 만이다. 미국과 다른 훈련 방식에 대해 박찬호는 “함께 하면서 ‘팀’을 느낀다”고 즐거워했다. 그는 “미국도 선후배 간 역할은 분담돼 있지만 한국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한국은 선배를 ‘모신다’고 해야 하나. 학창 시절에 느꼈던 것들을 프로에서 다시 느끼고 있다. 아예 새로운 게 아니고 원래 내가 알던 문화다. (선후배끼리 친밀한 분위기가) 즐겁고,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박찬호가 말이 많은 이유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많아서다. 그래서 후배들과 하루빨리 눈높이를 맞추고 싶어 한다. 후배들에게 존칭이 아닌 ‘찹(CHOP·박찬호의 미국 별명)’이라 부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 안승민은 “박 선배와 야구·인생·영어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대화한다. 열흘 동안 1억 마디쯤 나눈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선배님은 확실한 자기 프로그램이 있다. 팀훈련 뒤 꼭 개인훈련을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일은 오늘 꼭 해야 한다’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했다.

투산(미국 애리조나주)=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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