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5) 대우·삼성 총수 빅딜 직접 중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빅딜은 목숨을 건 승부였다. 삼성과 대우는 삼성차 인수가격과 자동차 생산조건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규성 재경부 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까지 나서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김우중 대우 회장을 중재하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사진은 두 회장이 심야합의를 한 1999년 3월 22일 회동에 앞서 1월 22일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빅딜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노력하자”며 손 잡은 모습. [중앙포토]

빅딜은 회사의 명운을 건 승부였다. 실무를 맡았던 이들의 중압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사투(死鬪).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처절했다. 대우와의 빅딜 협상이 한창이던 1999년 초, 그는 신장암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앙상하게 말라갔다. 얼굴빛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눈이 퀭한데도 눈빛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두 차례 수술 일정을 잡았다가 미뤘다고 한다. “일단 수술부터 받으시라”고 하는 직원에게 “그럼 이 일을 누가 마무리하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는 암 선고를 받은 지 7개월 뒤인 99년 4월께에야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구조조정 업무에 복귀했다.

 이학수뿐인가. ㈜대우의 장병주 사장은 어땠는가. 그는 98년 3월 첫 번째 위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출근했다. 쓰러져 가는 회사를 살리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내 사무실에 찾아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너무 애처로워 고개를 돌렸다.

 그만큼 절실한 승부였다. 빅딜이 결론나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간신히 ‘선인수 후정산’ 조건에 합의했지만 이번엔 SM5 생산 조건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대우는 “2년간 10만 대만 만들겠다. 파는 건 삼성이 책임지라”고 나섰다. 삼성 측에선 “5년간 35만 대를 만들어야 한다. 판매는 대우가 맡으라”고 버텼다.

 강봉균과 나는 손을 들었다. “이학수·김태구, 구조조정본부장들로는 해결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이건희·김우중 회장의 결단이다.

99년 3월 22일 저녁, 나는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승지원으로 가지 마십시오. 장소가 샜는지 기자들이 쫙 깔려 있답니다.”

 “그럼 어디서 보는 게 좋겠소.”

 “힐튼호텔 펜트하우스에서 뵙겠습니다.”

 차가 남산 자락으로 방향을 꺾었다. 김우중·이건희 회장이 참석하는 4자 회담. 애초 7시 한남동 승지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언론에 장소가 노출돼 급히 장소를 바꾼 것이다. 오후 9시를 넘긴 시각, 힐튼호텔 펜트하우스의 특별실. 김우중 회장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짧은 백발이 듬성듬성했다. 98년 11월 15일에 받은 뇌혈관 수술의 흔적이다. 그는 수술을 받은 지 3주 만에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갔다. “비행은 무리”라는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쳤다. 아세안 정상회담에 참석 중이던 DJ를 만나 “무역금융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 요청을 포함해 모든 지원 요청은 거절당했다. 빅딜은 그에게 마지막 승부수다.

 나는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한때 세상을 함께 누볐던 사이다. 지금 그는 재벌 총수, 나는 싫든 좋든 재벌 구조조정의 책임을 맡고 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규성 장관이 곧 도착했다. 회의는 2시간을 넘겼다. 이날 내린 결론은 이랬다.

 “대우는 SM5를 2년간 연 5만 대씩 생산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3만 대 이상은 생산한다. 삼성은 연간 1만5000대를 팔아준다. 다음 달 1일부터는 공장을 가동한다.”

 두 회장 모두 후련한 표정은 아니었다. 타협이라는 게 그렇다.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는 것이니, 둘 다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협의 내용을 종이에 정리하고 일어서니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다. 장소까지 바꾼 뒤의 마라톤 회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래도 손을 잡고 웃으며 헤어졌다. 그러나 웃음의 끝자락이 개운치 않았다.

 대우는 협상 직후 삼성차 인수팀을 부산 공장에 파견했다. 4월 말까지 삼성차를 완전 인수한다는 협상 내용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결국 깨진다. 인수 가격을 따지고 들어가자 다시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등장인물

▶김우중(77) 전 대우그룹 회장=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세운 대우실업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대기업을 일군 입지전적 인물. ‘세계 경영’을 주창하며 동남아·미국 등지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다. 1999년 8월 그룹을 워크아웃 신청한 뒤 출국해 6년간 해외에서 떠돈다. 2005년 6월 입국해 국외 재산도피와 분석회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12월 특별 사면됐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그의 도움을 받은 게 인연이 돼 82년 대우에 입사해 3년간 같이 일했다. 김용환 전 장관과 함께 내 인생의 멘토 중 한 사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