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칼럼] 아시아 경제 IT 하기 나름

중앙일보

입력

IT혁명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5%를 넘는다. 앞으로 조정과정을 거친다 해도 생산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 10년 동안의 인터넷 보급은 모든 경제활동의 ''e화(化) '' 라 부를 만한 양상을 보였다. 기업은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개척했다.

이 흐름은 벤처기업은 물론 전통적인 대기업까지 휩쓸어 전체 미국경제의 구조를 크게 바꾸었다.

이러한 IT혁명의 물결은 한국.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나라.지역별 격차가 있긴 하지만 IT산업기기 생산확대와 이동통신.인터넷의 급격한 보급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 경제는 빠르게 IT화가 진행 중이다.

최근 아시아 경제는 IT관련 기기의 생산에 힘입은 바 크다. 국내총생산(GDP) 에서 차지하는 IT관련 기기 생산액의 비율은 한국 등 신흥공업국(NIES) 이나 아세안 4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 에서 큰 폭으로 늘어났고 그 비율은 미국을 크게 앞지른다.

예를 들어 1991년부터 96년까지 한국 제조업 전체의 연평균 성장률은 7.5%인데 비해 컴퓨터 관련부문은 19.5%, 텔레비전.통신기기 관련부문은 18.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다만 이같은 IT관련 기기의 생산확대는 미국 등 주요 수출국의 수요 확대에 따른 것이어서 ''수동적 IT경제화'' 인 게 사실이다.

요즘 뚜렷해진 현상은 IT관련 하드웨어 생산뿐 아니라 통신관련 시장과 IT서비스 시장이 아시아에서도 크게 확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은 휴대전화의 급속한 보급과 인터넷 이용의 확대다.

99년 한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50.4%로 고정전화의 보급률 45.7%를 웃돌기에 이르렀다. 이밖에 홍콩 54.9%, 싱가포르 47.5%, 일본 44.9%로 모두 50% 안팎이다.

인터넷의 이용은 아직 미국보다 못하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이용자는 98년 3백10만명에서 99년에는 3배 이상인 1천86만명으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싱가포르.대만.말레이시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보급률은 아직 낮지만 증가율은 매우 높다.

99년 8백90만명인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2000년엔 1천만명을 넘을 기세다.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앞으로 1~2년내에 미국.캐나다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IT경제화에 따라 아시아의 경제구조는 미국과 같은 지식집약형으로 탈바꿈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이 이뤄지는 다음 단계, 즉 신경제(뉴 이코노미) 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

신경제로의 이행에 성공하면 효율성.잠재성장률의 향상에 따라 장기간 고도성장이 계속되는 ''신 아시아의 기적'' 이 실현되는 것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신경제의 진전은 미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예컨대 휴대전화의 폭발적인 보급은 퍼스널 컴퓨터를 중심으로 인터넷 이용이 확대된 미국과는 다른 패턴이 실현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즉 아시아에서는 휴대전화.TV 등이 인터넷 접속의 주류를 차지, 사무실 밖에서의 인터넷 이용은 미국을 능가할 것이다.

아시아 신경제화의 성공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는 대기업, 즉 한국의 재벌이나 중국계 가족기업, 일본의 대기업군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점이다.

대기업군의 효율과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 한 IT화가 반드시 고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IT혁명을 어떻게 흡수, 발달해 가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신경제화에 따른 새로운 분업체제가 아시아 역내에 형성될 것이란 점이다. 2차 세계대전후 아시아는 일본.한국 등 신흥공업국, 아세안 국가들이 잇따라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발전시킨 이른바 ''기러기떼형'' 성장을 이룩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한국의 직접투자.기술이전이 큰 역할을 했다. 즉 동아시아 국가들은 임금상승 등으로 경쟁력을 잃게 된 산업분야의 제품을 후발국에서 수입하면서 자국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후발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증대시켰다.

그 결과 기술과 경영 노하우가 이전돼 동아시아.동남아시아는 상호보완성을 가진 분업체제를 형성해 왔다.

이같은 제조업 중심의 분업관계는 지금도 상당부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IT혁명에 따른 신경제화로 상호관계는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제조업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앞장서 아시아를 이끌어 왔지만 신경제하의 아시아는 보다 더 다각적인 분업관계를 형성할 것이다.

신경제의 핵은 여러개의 아시아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홍콩.싱가포르.도쿄(東京) 가 중심이 돼 각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축으로 국경을 뛰어넘는 기업활동이 펼쳐지고 미국.유럽과 연결되는 패턴이 될 것이다.

거기에 중국과 인도 등 방대한 인구를 가진 나라가 어떻게 관련되고 방글라데시.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후발국들은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신 아시아의 기적'' 을 이루기 위해 지역내 모든 나라들이 어떻게 협력해 갈 수 있을까. 우리는 21세기의 첫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사카키바라 약력]
- 1941년 가나가와(神奈川) 현 출생
- 도쿄대학 경제학부 졸업, 미 미시간대학 경제학 박사
-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재무관. 재직중 엔고를 시정, ''미스터 엔'' 으로 불림
- 현 게이오(慶應) 대학 글로벌 시큐리티 리서치센터 소장
- 저서 : ''일본재생'' ''시장원리주의의 종언'' ''진보주의와의 결별'' ''문명으로서의 일본형 자본주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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