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드러낸 은행 구조조정의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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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달하는 부실은행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의 청사진 마련에 착수,이르면 연내 대형 선도은행이 선보일 전망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은행 구조조정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도 갖고 있지않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부실한 은행에 대해서는 정부 주도로 연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혀왔다.

따라서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은행 통합의 청사진 마련에 착수했다는 것은 바로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부실한 은행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의 시나리오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지주회사 방식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2개의 대형 시중은행과 지주회사를 원하는 지방.후발은행을 하나로 묶어 전체적으로 2∼3개의 은행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중 어떤 은행을 어떤 방식으로 지주회사로 묶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들어 은행권에 권고할 방침이다. 연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기위해서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빛+조흥,외환+우량은행 유력=정부는 그동안 끊임없이 나돌았던 한빛·조흥·외환은행을 하나의 지주회사로 묶는 방안은 검토하지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3개 은행을 묶을 경우 기업금융과 국제금융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기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3개 은행이 통합하면 국내 대기업금융의 70∼80% 정도를 점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형 선도은행이 대기업 금융의 70∼80%를 차지하게 될 경우 독점에 따른 폐해나 관치금융 논란이 끊이지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성숙되지않은 국내 금융환경에서 다른 은행들이 쫓아오지못할 정도의 거대은행을 만들어 놓으면 경쟁환경 조성에도 문제가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정부가 대주주인 한빛·조흥은행을 묶어 기업금융 전문의 대형 은행을 탄생시킨뒤 외환은행과 지주회사를 원하는 우량은행의 통합을 유도하기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대 주주인 코메르츠은행과 협의, 외환은행의 부실채권을 먼저 정리하고 증자 등을 통해 클린뱅크로 만들어 어느 우량은행과도 대등한 입장에서 통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외환은행과의 합병파트너로 국민은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주택은행은 소매금융 전문으로 독자생존을 선언했으나 국민은행은 아직 방향 설정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기때문에 기업금융과 국제금융에 강점이 있는 외환은행과 통합한다면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만약 한빛,조흥, 외환,국민은행의 지주회사를 통한 통합이 성사된다면 라이벌 선도은행으로 바람직한 경쟁 구도가 될 것이며 이는 국내 은행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 은행의 구조조정=평화은행과 광주은행, 제주은행 등을 하나로 묶는 지주회사가 해당 은행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들 은행은 독자생존을 위해 증자나 영업력 확대를 먼저 추진한뒤 여의치않을 경우 지주회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계는 내년부터 예금부분보장제가 시행되면서 예금이동이 본격화되고 대형 선도은행들이 탄생하는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할 경우 이들 은행의 독자생존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경영상태가 좋지않은 지방.후발은행들이 2∼3개 정도 통합하는 지주회사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입장이지만 참여은행들이 늘어날 경우 수용을 검토해보겠다는 자세다.

따라서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경영상태가 좋지않은 지방·후발은행이 대형은행의 지주회사에 편입되지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의 구미에 맞는 `통합 조합'을 만들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중 제일은행은 지금처럼 독자생존으로 가며 서울은행은 경영을 정상화한뒤 해외매각을 추진하되 여의치않을 경우 금융지주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량은행의 경우 당초 방침대로 정부 간섭없이 해당은행이 스스로 진로를 결정토록 할 계획이다.(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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