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통합 합의했지만 … 머니 바주카포 화력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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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눈치 보는 캐머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운데)가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메르켈 총리가 강력히 추진한 재정통합을 반대했다. [브뤼셀 로이터=뉴시스]

과연 유럽 사태가 진정될까.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9일 막을 내린 뒤 글로벌 시장의 최대 궁금증이다. 지난주 말 미국과 유럽 주가는 1.5~2% 정도 올랐다. 정상회의 결과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셈이다.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56) 등 EU 리더들이 새로운 합의에 이르기는 했다. ‘안정·성장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이다. 이른바 재정통합이다. 헤르만 반롬푀위 유럽정상회의 의장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회원국과 비회원국 등 최대 26개 나라가 서명할 듯하다”고 말했다. EU의 핵심 멤버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45) 총리는 “협약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재정통합의 역사적인 의미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유로 시스템이 1991년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 꼭 20년 만에 중대한 변화다. 단일 통화시스템의 한 축인 재정통합이 가능해졌다. EU 리더들은 제재조항도 신설했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어서면 해당 국가는 미리 마련해 놓은 재정지출 축소와 세금인상 프로그램을 가동시켜야 한다. 협약 서명국은 재정정책 주권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재정통합이 내년에 잘 이뤄지면 유럽 국가들은 유로공동채권을 발행하거나 유럽중앙은행(ECB)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처럼 마지막 대부자로 나설 수 있을 듯하다. 위기 대응 능력이 한결 업그레이드되는 셈이다.

 문제는 발등의 불인 이탈리아·스페인 위기다. 두 나라 채권 값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여차하면 매수자가 종적을 감출 수도 있다. 게다가 유럽 시중은행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유럽 재정통합이 이뤄지기 전에 해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은 재정통합을 이루기도 전에 전면적인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유럽 리더들이 나름대로 대책을 제시하기는 했다. 2013년 7월께 만들려던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 5000억 유로(약 760조원)를 1년 정도 앞당겨 설립하기로 했다. ESM은 상설 구제금융이다. 또 유럽의 27개 중앙은행이 2000억 유로(약 304조원)를 갹출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구제하는 데 쓰기로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유럽의 머니 바주카포(구제금융) 화력이 기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4400억 유로까지 합하면 1조1400억 유로(약 1732조원)로 증액된 셈”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로이터·AFP통신과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메르켈 등이 당장 쏟아부을 수 있는 자금은 EFSF의 2500억 유로, IMF 지원금 2000억 유로 등 모두 5500억 유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시중은행의 구멍난 자본금을 메워주는 데 1140억 유로 정도가 동원돼야 한다. 이탈리아·스페인이 앞으로 6개월 사이 갚아야 할 빚이 얼추 5000억 유로 정도다. 메르켈의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로이터통신은 “최근 EU 분석기관이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구제금융을 2조~2조3000억 유로 정도 조성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메르켈 등에게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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