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쌈장 나간다' 20살 게이머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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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세대들에게는 일과 놀이가 하나되는 직업으로 한창 주목받고 있지만 '직업=평생직장'이란 관념의 기성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이 프로게이머.프로게임 리그가 속속 결성되고 SBS·MBC등 공중파 방송까지 게임중계에 나선 요즈음 새내기 프로게이머 최재천(20)씨를 통해 프로게이머를 선택한 젊은이의 생각을 들어봤다.

최씨는 올 2월 네띠앙팀의 선수로 본격적인 프로 경력을 시작,지난 3월26일 끝난 한국인터넷게임리그(KIGL) 춘계리그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상금 5백만원의 우승을 거머줬다.최씨의 아이디는 '세리팍(Se_ri_pak).짐작대로 골프선수 박세리의 열렬한 팬인 최씨는 "스타크도 스포츠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스타크의 매력은 무한대결
컴퓨터랑만 하는 게임이라면 한계가 있는 데,스타크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니까 전략전술이 무궁무진해요.밤새우게 되죠.처음 시작한 건 2년 전이었는데,그 때는 아직 학생(성동기계공고 3학년)이라 일주일에 한번씩만 피씨방에서 밤을 새웠어요.래더(경기성적순위)가 점점 올라가서 한때 오리지널(스타크래프트 초판)과 브루드워(스타크래프트 신버전)에서 동시에 1위를 하면서 '세리팍'이라는 아이디가 유명해졌어요.상금 50만원짜리 동네 대회에서 우승도 하구요.

프로게이머는 밤낮이 바뀐다
매일 밤10시∼새벽5시까지 PC방에서 연습해요.낮에는 중고생들로 시끄럽고,고수들은 밤에 모이거든요.계속 실전이죠.한 게임에 20분쯤 걸리는 데 많이 한 날은 온종일 60게임까지도 해봤어요.래더로 하지않고 아는 아이디끼리 해요.오후 3시쯤 일어나는데,이러니까 다른 일상생활 못해요.다른 생활도 충실해야 하는데,그게 잘 안돼요.얼굴 아는 데니까 무료로 하지요.

프로게이머도 국제경쟁력일까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된다면 게임 열기가 뜨겁다면 그럴 수 있겠지요.(아직은 아니라는 얘기다)프로그램 개발이요? 게이머라면 누구나 나도 이런 것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나라면 더 잘 할 수 있다 생각하지요.하지만 그럴려면 프로그래밍도 공부해야하고…어떻게 하는 지 몰라요.국내 게임이요?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게 벌써 3년전인데도,아직 인기가 있잖아요.국산이랑은 한 10년 차이 나는 것 같아요.한 7년쯤 후면 우리나라도 그런 거 만들 수 있겠지요.

불패의 신화는 없다
최고수라고 해도,다음번 게임에서는 무명선수한테도 져서 초반에 탈락할 수 있는 게 스타크래프트에요.초반 러시(기습공격)로 승부를 내느냐,멀티(여러 개의 기지를 건설하는 전략)로 중반이나 후반을 노리느냐,상대가 어떤 전략을 택하는 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거든요.

인기 게임 종목이 바뀌면 어떻게 하냐구요? 오리지널하다가 브루드워 나왔을 때 따라가느라고 며칠 고생했어요.그 정도로는 힘들겠지요.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은 키보드·마우스 조작이나 전략·전술 구사에 숙련돼있으니까 금방 따라갈 거에요.스타크는 그런 숙련이 굉장히 중요해요.고수라도 한 번 손실수하면 지는 거지요.

스타는 필요하다
대중매체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 중에도 고수가 많아요.유명해진 친구들은 매니저들이 잘 한 거죠.쌈장(이기석)이 스타가 된 것도 스타가 필요했기 때문이죠.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우승하면 승부 조작했다,부정이 있었다 이런 말이 나와요.알려진 사람이 우승해야 경기가 더 주목을 받지요.

프로게이머에게 국경은 없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스웨덴,캐나다 이런 데 사람들하고도 경기를 하는 게 신기했지만,지금은 별로예요.한국선수랑 외국선수가 경기하면요? 잘 하는 사람이 이겨야죠.그래야 통쾌해요.기욤 패트리나 그런 선수들은 외국이 우리만큼 활발하지 않으니까 한국에 온 거죠.

최고수가 되고 싶다
세계에서 제일 잘하고,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여자친구(역시 프로게이머다)랑 나란히 우승도 하고 싶고.고등학교 때 꿈이요? 꿈이라기 보다는 부모님께 폐 안끼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겠다,그런 정도였어요.볼링·탁구·축구 다 한 번 빠지면 재미있어서 그것만 몇 달씩 했는데,공부는 재미있었던 적이 없어요.어른들이요? 처음에는 이런저런 걱정 많이 하셨는데,지금은 말썽만 피우지 말아라,하시는 정도에요.부모님까지 나서서 프로게이머 학원 찾는 애들이요? 백명에 하나 둘쯤 될까.부럽죠.공부만 하라고 하지 않는 부모니까.

많이 버는 건 아니다
동네 대회까지 다 합하면 지금까지 상금은 1천2,3백만원 정도.그 돈으로 2월달에 PC방앞에 월세 얻어서 독립했어요.구단에서 받는 돈은 6개월 계약에 월1백만원 정도.연봉으로 2천,3천 받는 선수도 있으니 많은 편은 아니지요.너무 많은 돈이란 생각은 안해요.이것하면 다른 일 못하잖아요.

게임에 나이 제한은 없지만
PC방에 70%는 학생이고 나머지는 아저씨·아줌마들이에요.같은 게임하면 다 통해요.일산에 있는 PC방에서는 60대 할아버지가 하는 것도 봤어요.저도 나이 먹어도 할 것 같아요.평생직업이요? 그건 좀 힘들겠지요.우선 군대도 가야하고.이렇게 돈 모아서 개인사업같은 것 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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