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닷컴세대가 폭탄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구식 기업체제는 ‘전후(戰後) 피해수복’이라는 경제목표가 뚜렷한 시절에는 잘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수리가 필요하다. 또 점차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사업 모델은 경직된 계급 인사체제에 뿌리를 뒀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면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했다. 일단 대기업에 취직만 하면 지식이나 재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만 지키고 앉아 나이가 들면 자동적으로 승진했다. 오늘날 일본 은행계에서는 출신대학을 묻거나 졸업연도를 묻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 그러나 계급사회에선 어느 직원이, 언제 입사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것이 이해가 안 된다. 출세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나이보다는 능력과 근면이 중요한 것 아닌가. 문제는 또 있다. 일본 기업에서는 직무의 한계가 대체로 모호하다. 많은 사람이 약간씩 다르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같은 일을 한다. 이같은 체제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썩게 한다. 게다가 일본 기업은 좀체로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효율적으로 여겨졌던 이 낡은 모델이 이제는 생산에 방해만 될 뿐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어 생산성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큰 시련에 봉착할 것이다.

희소식이 없는 건 아니다. 일본은 적응능력이 뛰어나다. 1천 년 전부터 일본은 선진국에 사람을 파견해 기술과 인생철학을 습득시켰다. 고대의 유교(儒敎),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의 의회 민주주의, 2차대전 후의 전자·자동차 산업 등 우리는 지식을 수집해 우리 문화에 잘 응용했다. 똑같은 현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똘똘한 직원을 미국에 많이 보내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게 했다. 또 일본의 많은 진취적 학생들이 미국의 투자은행과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일본이 ‘신경제’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그들이 선봉에 서 있다.

일부 신세대는 벤처기업, 특히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고 있다. 구식체제에 답답함을 느끼고 미국식 능력주의에 물든 다른 젊은이들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 인사구조는 여전하지만 좀더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도산한 야마이치 증권과 일본 장기신용은행은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기업은 몰락해도 종업원들은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두 회사의 많은 직원들이 새 직장을 찾았는데 일부는 금융계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직(轉職)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일본의 금융체제는 규제가 풀리고 있는 중이다. 그같은 정책변화 덕분에 외국자본이 더 많이 유입돼 변화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거품이 꺼진 뒤 일본의 많은 은행들은 위험부담을 꺼리게 됐다. 창업투자를 꺼리게 된 것이다. 요즘 도쿄(東京) 시내를 활보하는 많은 외국인 벤처 자본가들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는 인터넷이 몹시 중요해질 것이다. 웹에서는 거래하는 사이트 관리자의 연령·성별 등 정보를 잘 모른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웹은 일본 구체제의 敵이다. 계급사회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인다. 진취적인 젊은이들이 선배들과 동등한 비즈니스 무대에 서게 해준다. 인터넷이 창조하는 신나는 일자리의 기회는 구체제의 불필요한 업무를 대체할 것이다. 웹은 여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인터넷을 이용해 집이나 작은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다.

일본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제 폐쇄사회가 아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도 많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절반을 넘는다. 국민들의 저축총액은 어마어마해 13조 달러에 이른다. 현재는 그 돈이 보수적 저축기금에 묶여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일부가 벤처기업으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신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 모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도쿄 한복판에 있는 시부야(澁谷)는 일본판 실리콘 밸리다. 우리는 그곳을 가리켜 ‘비트 밸리’라 부른다. 많은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해 창업에 관심 있는 기업인들이 그곳으로 몰려든다. 구체제에 대한 불만이 하나의 폭탄을 만들어냈는 바 그 폭탄은 조만간 터질 것이다. 그날은 일본의 신경제가 태어나는 날이다.

(필자는 골드먼 삭스社 파트너였으며 지난해 일본 최초의 온라인 중개회사인 모넥스 증권을 창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