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엔 ‘푸틴 깜짝쇼’에 당해 … 청와대 “MB의 승부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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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대통령(현 총리·가운데)이 소치의 한 리조트에서 아이들과 리프트를 타는 모습. 푸틴 대통령의 홍보로 소치는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소치 로이터=뉴시스]


최근의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 경쟁은 유치 희망 국가 정상 간의 ‘파워게임’이 된 지 오래다. 2018년 겨울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평창)의 이명박 대통령은 독일(뮌헨)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한판 승부를 피할 수 없다. 이 대통령도 이 사실을 잘 아는 듯하다.

 이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2일 출국한다. 8박10일의 일정이다. 이 가운데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공의 더반에 5일 동안 머무른다. “한시라도 빨리 와달라”는 평창유치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2일 오후 늦게 출발하려던 계획을 오전으로 앞당겼다. 현지시간 2일 저녁부터 유치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 6일, 마지막 6시간, 마지막 6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겨울 올림픽 유치는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 대세를 가름할 ‘피니시 블로’ 한 방이 필요하다. 4년 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현 총리)이 그랬듯이.


 평창은 소치(러시아)에 개최권을 빼앗긴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 당시 푸틴 전 대통령의 원맨쇼에 압도당했다. 소치에서 멋진 스키 실력을 뽐내며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킨 푸틴 전 대통령은 과테말라에서 놀라운 승부수를 던졌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이끌면서 러시아어 대신 영어와 프랑스어·스페인어로 IOC 위원들을 설득한 것이다. 푸틴 전 대통령은 러시아어를 ‘영혼의 언어’라며 사랑했고, 이전까지 공식 석상에서 영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총회 분위기는 푸틴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압도됐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도 최선을 다했다. 그의 노력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푸틴 전 대통령의 영화배우 못잖은 화려한 퍼포먼스에 빛이 바랬다. 과테말라 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평창은 IOC의 평가 보고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겨울 올림픽 개최지 후보 도시에 대한 전문 평가 웹사이트인 게임즈비즈닷컴(GamesBids.com)의 후보 도시 평점 인덱스에서 평창은 64.99, 소치는 63.17, 잘츠부르크는 62.62였다. 그러나 2차 투표 끝에 소치가 개최권을 가져갔다.

 이명박 대통령도 빈손으로 더반을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승부욕이 강한 데다 큰 무대일수록 대담하게 행동하는 이 대통령의 특징에 비춰볼 때 ‘한 방’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관계자도 “상대국과의 경쟁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보안”이라면서도 “나름의 ‘승부수’를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싸움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평창의 맞수 뮌헨도 사력을 다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 대통령, 한스-페터 프리드리히 내무장관과 함께 더반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독일의 메르켈-불프 혼성조에 맞서 경쟁을 해야 하는 셈이다. 다행히 안시가 눈에 띄게 뒤처지는 인상이어서 전선은 명료해졌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메르켈 총리의 걸음은 이 대통령보다 빠르다. 지난달 30일엔 100명의 IOC 위원들에게 친서를 보냈다. 메르켈 총리는 친서에서 “뮌헨 겨울 올림픽 유치는 독일인들의 아주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라며 “우리는 세계를 뮌헨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고정애·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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