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경기대회 국제 망신

중앙일보

입력

"빙질은 일류지만 계측시스템은 수준미달이다. "

2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개막된 국제스피드스케이팅 스프린트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내한한 외국기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국내 유일의 국제빙상경기장 개장 후 치르는 첫 국제대회라 어느 정도 운영상의 실수는 예상했지만 계측시스템이 이틀에 걸쳐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한 독일기자는 "출발센서-전자계측기-전광판으로 이어지는 계측시스템이 국제경기를 치르기엔 너무 열악하다" 고 지적했다. 캐나다 기자는 "전광판이 빙상 강국 국제경기장의 보조전광판 수준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27일 벌어진 여자 5백m 경기에서 7조 선수들이 결승선으로 통과했는 데도 전광판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계측기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전광판이 오작동한 것이다.

26일에는 여자 5백m 4조경기가 끝난 뒤 출발 센서가 고장나는 바람에 전광판이 멈춰섰다. 당초 7억원을 들여 최신 계측시스템을 도입하려 했으나 예산부족으로 대체한 9천만원짜리 계측시스템이 말썽을 부렸다.

1백분의 1초를 다투는 빙상선수들에게 급작스런 경기중단은 컨디션 조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항의가 잇따랐고, 국내에서는 처음 벌어진 국제 스프린트대회를 생중계하던 미국 ABC방송도 차질을 빚었다.

50여분후 경기는 재개됐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탓인지 제레미 워더스푼(캐나다) 등 정상급 선수들의 기록이 좋지 않았다.

기록에 대한 항의도 이어졌다. 센서 고장 때문에 스톱워치로 기록을 재야 했던 여자부 우승후보 카트리오나 르메이돈(캐나다)은 자신의 5백m기록(38초93)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라이벌 모니크 가브레이트(독일)의 기록과 불과 0.12초 차이여서 항의는 더욱 거셌다.

급기야 옥타비오 신칸타 국제빙상연맹(ISU)회장은 27일 대회 폐막직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첫 대회 시행착오 치고는 경기지연 시간이 너무 길었다" 고 지적했다.

총공사비 2백50억원을 들여 지난달 완공된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달 중순 겨울체전 빙상경기를 치렀다. 당시 국내언론은 시설에 비해 경기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점을 우려했었다.

빙상 관계자는 "계측시스템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 해도 협회에서 사전점검을 철저히 했더라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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