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직원이 3분의 1 인 중소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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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호의 최병채 사장(中)이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左)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배씨는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휴가를 내고 쉬고 있는 상태다. 임현동 기자

'뚝딱뚝딱-. 위이잉-, 철컥철컥'.

경기도 하남시의 악기 부품 제조 업체인 ㈜진호의 공장.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작업하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3명이 한 조가 돼 한 명이 작은 부품에 고무링을 끼워 넘기면 다른 이가 망치로 톱니바퀴를 끼워 넣는다. 마지막 한 명은 이를 전동 드라이버로 고정한다.

자폐증을 앓는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달장애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 공장 직원 수는 임원을 포함해 모두 68명. 이들 중 3분의 1이 넘는 26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23)씨도 2003년 가을부터 이곳에서 일한다.

이 회사 최병채(45) 사장은 이웃의 자폐아를 지켜보며 "웬만한 단순작업은 이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발달장애인을 고용했다.

서울 장지동의 한국육영학교(특수학교)의 도움을 받아 2001년 10명의 고등학교 과정 졸업생을 처음 받았다. 어려움은 각오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들을 10분 이상 앉혀놓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 손을 물어 뜯고 공구를 집어 던지는 걸 말리다 보면 반나절이 지나갔다. 한 번도 혼자 식사를 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점심을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적응하지 못한 3명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려 보냈다.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공장에 견학 온 다른 업체 사장들조차 "앓느니 죽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이들이 회사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까지는 1년 이상이 걸렸다. 이젠 한번 앉아 있는 시간도 평균 2시간으로 늘었고, 일반인 근로자의 80%까지 작업 능률이 올랐다. 올 초 개봉된 영화 '말아톤'이 인기를 모으면서 '장애인 근로자'의 자세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점심시간에 줄넘기 운동을 하는 장애인이 하나둘 늘었고, 축구공도 곧잘 찬다. 다른 직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가끔 회사에 찾아오는 부모들은 자식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다.

최 사장은 "한 장애인 전문가에게서 '발달장애인 20명을 고용하면 그 주변 100명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며 "내후년 공장을 증설하면 발달 장애인을 100명 정도 더 고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진호를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장애인 고용기업으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최 사장은 14일 배씨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중소기업사랑 마라톤대회'에 나간다.

㈜진호는 국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악기 부품업체다. 기타 등 현악기 줄의 팽팽함 조절하는 '튜닝키'를 만들어 한국 세고비아, 일본 야마하 등에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72억원이다.

하남=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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