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현대차, 정가판매제 도입한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요즘 현대·기아자동차의 내수를 담당하는 국내영업본부가 이상하다. 신차를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정가판매제를 들고 나와서다. 소비자의 피해를 막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A라는 소비자는 쏘나타를 100만원 싸게 사고, B라는 소비자는 50만원 깎아 사면 B의 불만이 커진다는 게 국내영업본부의 시각이다. 그래서 전국 어디서나 같은 가격에 팔아야 소비자 만족이 커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속사정은 좀 다르다. 현대·기아차에서 월급을 받는 직영 영업사원(노조원)보다 기본급 없이 판매수당으로 먹고사는 대리점 영업사원의 수당이 조금 더 많다. 수당은 누진제처럼 증가한다. 그러다 보니 대리점 영업사원들은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자기 수당에서 수십만원씩 할인해준다. 당연히 월평균 판매수치에서 대리점 쪽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자 본사 영업사원들의 불만이 커졌고 국내영업본부가 들고 나온 게 정가판매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직영과 대리점 영업사원 간 갈등으로 그동안 수십만원씩 싸게 차를 샀던 혜택만 없어진 셈이다.

 미국에서 현대·기아차를 사면 정상가격의 10∼20%가량 할인을 받는다. 미국 소비자가 1만5000달러 하는 엑센트를 살 때 통상 미국판매법인이 1500달러의 할인 패키지를 내놓고 판매를 담당한 딜러가 자기 마진에서 1500달러를 깎아주는 게 보통이다. 국내 수입차 판매도 마찬가지다. 요즘 잘 팔리는 BMW 528과 320 가솔린 모델의 할인 폭은 회사 지원과 딜러 할인을 합쳐 7∼15% 정도 된다. 벤츠와 아우디도 모델에 따라 10%씩 깎아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같은 정가판매제로 그동안 소비자가 누리던 편익이 사라졌는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손을 놓고 있다. 수입차의 딜러제와 달리 현대·기아차 대리점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위탁판매 형태라 가격 통제가 정당하다는 해석이다.

 현대·기아차가 정가판매제를 정착시키려면 소비자 혜택을 증가시키는 보상책도 함께 내놨어야 했다. 그동안 미국보다 월등하게 손해를 봤던 무상 보증기간이 대표적이다. 아니면 신차 가격을 3∼5%씩 내리는 방법도 있다.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라는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