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통기타 선율 … 광화문의 ‘세시봉’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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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편 라이브카페 ‘가을’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 이종열(오른쪽)씨가 7080 가요를 열창하고 있다. 손님들은 대부분 40~50대 직장인이다. [김도훈 기자]


“오늘 밤에도~초원에 누워~별을 보며 생각하네~ 집시 집시 집시 집시 여인~.”

 28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자리 잡은 라이브카페 ‘가을’. 한 무명 가수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집시 여인(이치현과 벗님들·1986)’을 열창했다. 40~50대 남녀 손님들은 박수를 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와이셔츠 차림의 한 50대 남성은 급기야 테이블을 뛰쳐나와 현란한 스텝으로 디스코를 추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손님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60년대 종로에 음악감상실 ‘세시봉’이 있었다면 2011년 광화문엔 라이브카페 ‘여름’ ‘가을’, 그리고 카페 ‘봄’이 있다. 최근 ‘세시봉 열풍’이 불면서 이들 세 가게 역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30년간 광화문을 지켜온 ‘가을’의 현계림(53) 사장은 “7080 열풍의 원조는 우리”라고 했다.

 매일 오후 8시 라이브공연이 펼쳐지는 이곳은 7시30분쯤이면 테이블이 꽉 찬다. 카페에 들어오지 못한 손님들은 좁은 계단에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린다. 주말에는 강남·분당·일산은 물론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 가게 10년 단골이라는 김형진(48)씨는 “70~80년대 향수를 간직한,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옛 음악을 함께 즐기다 보면 꼭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가을’에서 각각 몇십m 떨어진 곳에 ‘봄’ ‘여름’ ‘겨울’도 있다. 장혜숙(48·여) 사장이 운영하는 ‘여름’은 라이브카페라는 점에서 ‘가을’과 같지만 좀 더 소탈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장 사장은 “최근 ‘세시봉 친구들’의 멤버인 송창식·윤형주·김세환씨의 노래를 신청하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봄’의 경우 라이브공연은 없지만 이용심(49·여) 사장의 뛰어난 선곡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추억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손님들이 가게에 비치된 통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기도 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의 역사는 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계림 사장의 누나 현정희(2004년 작고)씨가 당시 ‘여름’이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고 몇 년 뒤 ‘가을’도 열었다. 이어 현씨의 지인들이 각각 ‘봄’과 ‘겨울’을 열어 88년 사계가 완성됐다. 이들 사계에선 ‘운동권’으로 불리던 젊은 청년들이 통기타 하나를 들고 모여 합창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5년 전 ‘가을’과 ‘여름’은 라이브카페로 바뀌었다. ‘겨울’은 올 초 현정희씨의 딸이 맡아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으로 바꿨다. 이들 카페의 단골이라는 정준(51)씨는 “점점 갈 곳이 사라지고 있는 40~50대 직장인에게 안식처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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