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성에게 일본의 길 묻다 ④ (끝) 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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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재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리더십이 문제시된다. 뭘 잘못했나.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11일에는 잘했다. 그런데 그 뒤를 보면 과연 지금 일본을 누가 지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즉각 대응해야 하는 것과 중장기적 대응을 잘 나눠 추진해야 하는데 간 총리는 툭하면 현장에 갈 생각만 하고 단편적인 일만 하고 있다. 큰 그림과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국민이 불안해한다.”

 -앞으로 간 총리의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현재로는 힘들다. 여태껏 없던 리더십이 나올 리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를 (총리에서) 끌어내리고 다른 이를 내세울 시간적 여유도 없다. 당분간 간 총리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간 총리 밑의 준지도자들이 잘 받쳐줘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에게 기대가 크다. 그는 사태에 대응하면서 해야 할 말을 똑바로 했고, 언론의 추궁에도 화내지 않고 정중히 설명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왜 일본에서는 뛰어난 리더십이 안 나오는가.

 “반세기 동안 계속된 자민당 1당 지배로 인재가 고갈됐다.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면 인재가 좀 있겠지 했는데 거기도 없으니 국민이 아연실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인에게 맡길 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인재를 동원해 일종의 최고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란 국가 청사진, 즉 일종의 그랜드디자인을 폭넓게 공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의외로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기존 정치인의 아이디어는 별로 바뀔 게 없다. 예컨대 도호쿠 재해민들을 꼭 원래의 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간사이(關西) 지방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 수도 있다는,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근대 일본 정치사를 전공했는데, 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절실한 일본의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형 리더십이다. 그가 5년간 정권을 유지했던 건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애초 그가 장수할 것으로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대통령형 리더십’이다. 자신이 앞장서 방향을 제시하고, 그걸 행동으로 이끌어 갈 인재를 폭넓게 모았다. 방향성이 확실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은 단순 복구가 아닌 새 국가 만들기를 이뤄낼 수 있다고 보나.

 “요즘 ‘부흥청’ 신설이 거론되는데, 그걸로는 안 된다. 국가 전체를 재편하는 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경제인이나 문화인,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최고위원회 같은 걸 만들고 그곳에서 ‘뉴 재팬’의 그랜드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은 최고위원회 밑의 실행본부에서 관료와 행정부처 주도로 하면 된다. ”

 -하지만 거기에는 막대한 자금과 국민 희생이 따른다. 일본인들은 그걸 감내할 각오가 돼 있나.

 “국민이 수용하려면 결국 제대로 된 지도자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냥 ‘견뎌 주세요’라고 할 게 아니라 ‘이건 이렇게 바꾸고 저건 저렇게 바꿀 테니 얼마 동안은 같이 손잡고 나가자’는 식으로 해야 한다. 강하고 설득력 있는 리더의 메시지가 필수적이다.”

 -일본 정치는 여야 대립으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돼 왔는데.

 “야당도 현 위기 시국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만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 상황에선 먼저 총리가 야당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단순히 ‘협력해 달라’고 요청만 할 게 아니라 ‘국난을 같이 극복하자’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근데 간 총리는 고개를 숙인 적이 없는 정치인이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와테(巖手)현 출신으로 도호쿠 지역에 영향력이 큰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도 과감히 등용해 ‘올 재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오자와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한시적 등용은 국민도 납득할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미쿠리야 다카시=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메이지(明治) 이후 일본 근대정치사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전후 일본의 국토개발과 도시계획의 분석가로도 명성이 높다. 정부 국토심의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나카소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등 전직 총리,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요미우리(讀賣)신문그룹 회장 겸 주필,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재해담당 책임자였던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전 관방부장관 등을 집중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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