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신작 〈부엉이의 성(梟の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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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요시다 기쥬우(吉田喜重)와 함께 쇼치쿠(松竹) 누벨바그의 대표적인 존재였고, 최근에는 『샤라쿠(寫樂)』,〈세토우치 문라이트 세레나데(瀨戶內海 ム-ンライトセレナ-デ)〉등을 발표했던 시노다 마사히로(田正浩)감독의 신작〈부엉이의 성〉이 현재 일본에서 상영중이다.

〈부엉이의 성〉은,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 지성계의 거인이자 역사소설의 대가인 시바 료타로우(司馬遼太郞)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주된 소재는 닌자(忍者)다. 닌자는 현재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기밀 정보의 입수, 정황 파악 등의 활동면에서는 정보부의 특수 요원이라고 할 수 있고, 적진 침투를 통한 요인 암살 등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특수 부대의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정보 요원이나 특수 부대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그 차이점은 국가나 기관에 종속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특수한 성격 때문에 닌자는 그 존재나 정체가 어둠에 가려진 채 그저 신비한 존재로서만 부각되어 왔는데, 〈부엉이의 성〉은 일본 역사속에서 음지에 가려져 있던 그 닌자라는 존재를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 개인으로서 다루고 있다.

〈부엉이의 성〉은 일본 전국 시대 말기, 강력한 카리스마로 혼란한 정국을 제압하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한가지 명령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어둠속에 숨어서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있는 닌자라는 존재에 대해 공포감을 느낀 오다 노부나가는, 5만의 군대를 동원, 닌자의 본거지인 이가(伊賀)를 공격, 닌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몰살시킬 것을 명령한다. 이 공격에 의해 이가의 닌자들은 거의 전멸하게되고, 소수의 살아남은 닌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모습을 감추게된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천하는 오다 노부나가의 암살 후 오다의 신하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정권을 물려받을 적자의 죽음으로 인해 조정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정권을 노리고 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은거하고 있는 이가의 닌자를 이용해 은밀히 히데요시의 암살을 추진한다.

이런 조정의 움직임으로 인해 산속에 숨어있던 이가의 살아남은 닌자 츠즈라 쥬죠우는 히데요시의 암살을 위해 당시의 수도인 쿄토(京都)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같은 이가 출신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복수를 꿈꾸다 그가 죽자 오다의 신하였던 히데요시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여자 곡예사 키사루, 같은 이가의 닌자 출신으로, 지금은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무사로서의 입신 출세를 꿈꾸며 관헌의 관리가 된 카자마 고헤이, 그리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전속 닌자 핫토리 한죠우에 의해 조종당하며 모든 사건을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쿠노이치(くノ一,여자 닌자) 코하기. 이야기는 이들 네 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히데요시의 암살을 위해 움직이는 쥬죠우와 코하기는 관리로서의 출세를 꿈꾸는 고헤이와 대립하게되고, 닌자의 움직임을 꽤뚫고 있는 고헤이는, 쥬죠우와 키사루의 동료들을 말살시킨다. 이런 사건들 속에서 쥬죠우와 코하기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적자가 없었던 히데요시는 또다시 아이를 얻게되고, 이로 인해 토쿠가와는 히데요시의 암살 계획을 중지, 암살 계획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없앨 것을 명한다. 계획의 중지로 인해 결국 키사루마저 죽게되고, 쥬죠우와 코하기는 같이 쫓기는 처지가 된다.

쥬죠우는 모든 것을 결말짓기 위해 히데요시가 있는 성으로 향하고, 히데요시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한낱 노인에 지나지 않는 히데요시의 모습을 보고는 암살을 포기한다. 암살을 포기하고 도주하던 쥬죠우는 고헤이와 숙명적인 대결을 벌이게 되고, 결국 결착(決着·結着: 결말이 나서 결정됨, 결말이 남 )이 나지 않은채 쥬죠우는 성에서 탈출, 오히려 고헤이는 닌자의 복장을 하고있던 탓으로 관헌에게 붙잡히게 된다. 고헤이는 자신이 토쿠가와쪽의 가신(家臣)이라고 해명을 하지만 모든 증거를 없애려는 토쿠가와쪽의 음모로 인해 존재를 부정당하고, 결국 끓는 가마속에 쳐 넣어지는 형을 당하게 된다. 닌자의 신분을 증오하며 출세를 꿈꾸던 고헤이가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본 쥬죠우와 코하기는 산속에 은거하며 살아간다.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부엉이의 성〉은 여러 가지의 문제를 안고있는 작품이다. 우선 첫 번째로 작품의 의도가 명확히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닌자라는 존재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표현하고자 한건지, 아니면 거대한 역사의 흐름속에 휩쓸리는 닌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건지 그 의도가 작품을 통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의견에 대해서 연출자는 개인과 군상(群像)을 동시에 표현하려 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개인의 고뇌의 이유도 명확히 보이지 않았고, 그 개인들을 움직이는 다른 여러 인물들의 욕망이나 행동 원리가 매우 애매했다. 쥬죠우는 히데요시를 정말로 죽이고 싶었던 것인지, 키사루가 원한건 여자로서의 행복이었는가 복수였는가,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주변의 인물들, 즉 히데요시나 이에야스, 핫토리 한죠우 등의 인간으로서의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극중의 캐릭터로서 명확히 부각된 매력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 영화로서 극중 캐릭터를 확립시키지 못했다는 점은 치명적인 실패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런 점들 이외에도 전국 시대 말기의 쿄토를 묘사하기 위한 컴퓨터 그래픽의 남용이 오히려 극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기 보다는 그저 양식미를 추구한 풍속화적이고 평판적인 일상의 묘사등이 아쉬운 점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은 작품으로서 내용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엉이의 성〉은 현재 일본 영화가 왜 일본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를-특히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감독들의 작품들이-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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