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기업평가는 정부 아닌 시장이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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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실장

기업은 늘 평가에 노출돼 있다.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주주와 투자가들에 의해, 돈을 빌릴 때는 금융기관에 의해, 그리고 노동시장에서는 인재들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

 중소 협력업체와의 관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로 인한 주가 하락이 이런 점을 보여줬다. 협력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해 소비자와 주식시장의 준엄한 평가를 받았다.

 이런 사례를 보면 시장만큼 기업을 즉각적이고 엄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아직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시장의 평가를 믿지 못하고 직접 평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지수와 노사관계 공정지수 도입을 추진하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받지 못하고 급조된 평가지표나 지수는 오래가지 못한다.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평가는 평가를 원하는 주체들이 직접 평가에 참여하고, 또 그 결과를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삼아 평가하고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그 파급 효과가 다르다. 해당 기업뿐 아니라 주주들까지 주가 하락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정부는 평가지수나 결과에 문제가 있더라도 ‘아니면 말고 식’ 정책실험으로 중단하거나 추진세력이 물러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과 주주들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명심해야 할 점은 기업은 많은 이해관계자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거래 중소기업이나 근로자 같은 일부 이해관계자만을 편드는 지표개발이나 정책을 정부가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평가지수 도입은 매우 신중히 해야 시장의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성도 보장받을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지표라면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정부는 왜 다른 나라들이 정부 차원의 지수정책을 신중히 하고, 신뢰할 만한 평가를 시장에 맡겨 해결하려 하는지를 잘 음미해야 한다. ‘측정 없이는 개선도 없다는 점’은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모두가 신뢰할 만한 측정과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 오랜 시일을 요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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