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합니다] '출산드라'에서 '뮤지컬'까지 넘나드는 그녀의 연기 내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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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일요일 밤이 되면 외모지상주의를 향해 독설을 뿜어내던 여자가 있었다. "이 세상에 날씬한 것들은 가라! 곧 뚱뚱한 자들의 시대가 오리니~" 를 목청껏 외치던 뚱뚱교 교주 '출산드라'.

2005년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출산드라'로 등장해 시사풍자 코미디로 큰 호응을 얻었던 개그우먼 김현숙(33).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이름 앞에 붙여야 할 수식어 하나가 더 생겨났다. 바로 개그우먼 겸 '배우' 김현숙이다.

그녀는 개그 무대를 시작으로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로 얼굴을 내비쳤다. 최근 김현숙은 한 케이블 방송 드라마에 출연해 30대 직장인 여성의 일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친근하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속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녀의 '평범한' 연기는 우리시대 '평범한' 여성들을 위로하는 토닥임과도 같았다. 이제는 김현숙은 커리어 우먼을 대변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녀는 '진정성'이란 단어를 수도 없이 뱉어냈다. 그녀가 말하는 '진정성'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꿈은 배우"...개그프로 출연 거절
원래 꿈은 배우였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하기를 좋아했다는 그녀는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과 그로 인해 느끼는 희열이 자신을 무대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 후, 부산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그녀는 연극무대에 서며 배우의 꿈을 다져왔다. 그러던 중 99년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KBS 캠퍼스 최강전을 통해 개그맨 박준형을 만났다. 무대 위에서 떨림 하나 없이 능청스럽게 웃기는 그녀의 끼에 반해 박준형이 개그프로 출연을 제의했지만 그녀는 '아직은 내공을 더 쌓아야 할때'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던 박준형이 5년 뒤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런 박준형에게 그녀는 "내 꿈은 개그우먼이 아닌 배우"라고 말했다. 그 때 박준형이 한 말을 그녀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개그우먼과 배우, 둘다 대중 앞에 서는 연기자다. 왜 그 둘을 굳이 나누려고 하느냐. 개그를 통해 너의 연기 재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이다"

그렇게 그녀는 개그 무대에 섰다. '출산드라'로 분해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을 신격화 해 찬양하고, 깡마른 여성들을 향해 쉼없이 먹을 것을 강요하며 "너의 시작은 삐쩍 골았으나 끝은 비대하리라"를 외치던 그 때, 그 때가 바로 '배우 김현숙'의 '첫 연기'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막돼먹은 '현숙씨'
이 후 '미녀는 괴로워'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등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에 시동을 걸던 김현숙은 마침내 운명의 작품을 만났다. 2007년 시즌 1을 시작으로 현재 시즌 8까지 제작되며 시청자의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는 화제의 드라마. 시청률 1%의 벽도 깨기 힘들다는 케이블 방송에서 2.34%라는 가히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며 말그대로 '대박'을 터뜨린 드라마. 바로 '막돼먹은 영애씨'다.

극중 '영애씨'의 역할을 맡은 그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완벽하게 연기해 시청자로부터 '케이블 연기대상이 있다면 단연 대상감!' '내가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으며 당당히 '배우'로 인정받았다. 마스카라 다 번져 검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기도 하고, 조금 귀찮다 싶으면 화장도 하지 않은 생얼로 돌아다닌다. 게다가 겨드랑이 털도 깎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자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공감100%'를 외치며 드라마에 몰입했다.

그래도 명색이 여배우인데 예뻐보이고 싶지 않을까? 이에 그녀는 "풀메이크업 한 채로 세수하고 잠자는 그런 어설픈 리얼리티를 위해 '영애씨'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고 단호히 말했다. 뒤이어 "여배우의 '예쁘다'는 기준을 '프로페셔널'에 두기로 했다. 내가 연기자로써 한 캐릭터를 선택한 이상, 최선을 다해서 최상의 것이 나오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어느샌가 '영애씨'에 흡수돼 가끔 자신의 실생활과 헷갈린다는 그녀는 "영애의 인생이 너무 안 풀릴때는 덩달아 나까지 우울해진다. 영애와 내가 함께 성장해가는 것 같다"며 "'막돼먹은 현숙씨'를 찍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 그녀가 말하는 '진정성'

김현숙은 최근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갔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일어나는 다섯 수녀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다룬 뮤지컬 '넌센세이션'에서 로버트앤 수녀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번 작품을 위해 노래 레슨 뿐 아니라 춤 연습까지 꾸준히 준비해왔다. '뮤지컬'이라는 것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장르만은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사실 노래를 아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들었을 때 '어머, 쟤 너무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극 중 맡은 로버트앤 수녀는 그녀를 쏙 빼닮았다. 빈민가 출신으로 산전수전 겪으며 자랐지만 점점 커가면서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그녀는 한 토크쇼에 출연해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야기를 털어놓은 바 있다.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다. 특히 '식당' 아르바이트는 칼국수, 떡볶이, 갈비, 생선구이 등 자신을 따라올 자가 없단다. 그녀는 "참 희한한게 내가 일할 때는 엄청 바빴던 곳이 내가 그만 두고 3개월 뒤에 쫄딱 망했다. 주인한테 전화가 왔는데 다시 돌아오라고 하소연 하더라"며 웃었다. 뒤이어 "일했던 식당이든 무대든 카메라 앞이든 누군가가 나를 끊임없이 필요로 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잘 달랠 수 있는 '페이소스'가 녹아든 연기·개그를 하고 싶다는 김현숙. 그러려면 무엇보다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그게 바로 '진정성'이죠"라며 크게 웃어보였다.

온라인 편집국=유혜은 기자 yhe11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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