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밤거리를 40분이나 걸었다, 담배 사려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6호 14면

안절부절못했다. ‘응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거였다. 물을 마셔보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신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순간 결심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모험을 감행하기로-. 대충 옷을 주워 입고 호텔방을 나섰다.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장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호텔을 나서는 순간 잠시 갈등이 생겼다. 그냥 방으로 돌아갈까. 조금만 참는다면 이 고생을 하지 않고 따뜻한 침대 속에서 편히 쉴 수 있을 텐데. 아냐, 나의 외출은 뚜렷한 목적이 있지 않은가. 나는 결국 갈등을 잠재운 뒤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낮에 미리 점 찍어둔 주유소까지는 승용차로 약 7~8분 거리. 그런데 따로 차가 없었으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적이 드문 밤길을 혼자 걸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걸어 다니는 생물체는 하나도 없었다. 승용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집 없는 부랑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이 정도 어려움쯤은 각오한 터였다. 20분쯤 걸었을까. 마침내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의 흰색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말보로 라이트, 플리즈.”
20대 초반의 여점원은 내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데 이 정도 불편함쯤이야. 나는 순순히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다.
“오케이, 파이브 식스티.”

나는 그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담배 한 갑에 5달러60센트라니. 우리 돈으로 6000원이 넘는 셈이었다. 그 돈이면 면세점에서 담배 반 보루를 살 수 있는 가격 아닌가. 잠시 주저했지만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나는 10달러 지폐를 건네주고는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받아들었다. 주유소를 나와서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 뿌듯함은 3분을 넘지 못했다. 담배를 끄기가 무섭게 자괴감이 몰려왔다. 담배 한 대를 얻기 위해 치른 희생이 얼마인가. 우선 왕복 40분의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셈이었다. 공항 면세점을 지나치면서 이번 출장길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며 이를 악물지 않았던가. 돈도 아까웠지만 담배 때문에 심야에 이 난리를 벌인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 후로 나는 담배를 끊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니코틴의 속박에서 힘겹게 벗어났다.

그런데 라운드를 할 때는 여전히 니코틴의 유혹을 느낀다. 특히 공이 안 맞을수록 악마의 유혹은 심하다. 18홀 동안 담배 두 갑을 가볍게 피워버리는 애연가도 봤다. 동반자 입장에선 애연가와의 동반 라운드가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파트너와의 18홀은 안개, 아니 연기 속의 라운드가 된다. 요즘엔 담배를 팔지 않는 골프장이 느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캘리포니아 출장길의 나처럼 담배가 떨어져 애를 태우는 골퍼들도 종종 만난다. 수도권 골프장 최 모 사장은 담배를 피우는 골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쥐도 쥐약인 줄 알면 절대로 먹지 않는데 사람은 쥐약인 줄 알면서도 찾아 먹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