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대출계약서 14일까지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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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현대건설 주주협의회는 현대그룹에 대해 이르면 14일까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금과 관련한 대출계약서를 내라고 다시 요구하기로 했다. 주주협의회는 1차 시한인 7일까지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를 내는지를 지켜본 후, 이를 제출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5일간(영업일)의 기간을 주기로 했다. 주주협의회가 재차 계약서를 요구했는데도 현대그룹이 응하지 않는다면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이 지난달 29일 맺은 양해각서(MOU)는 해지될 가능성이 크다.

 주주협의회는 6일 “현대그룹이 제출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의 대출확인서만으로는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7일까지 자료를 내지 않으면 MOU에 따라 5일의 시한을 주고 추가 소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1조2000억원 의혹=주주협의회는 애초 현대그룹에 나티시스은행 예금 1조2000억원과 관련한 대출계약서를 요구했지만 현대그룹은 대출확인서만 제출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총자산이 33억원에 불과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어떻게 1조2000억원을 빌렸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주주협의회의 판단이다. 또 대출확인서엔 나티시스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넥스젠캐피털의 등기이사 두 명의 서명이 들어 있어 논란이 됐다.

 나티시스의 손자회사인 넥스젠캐피털은 아일랜드에 설립된 투자회사로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기업자금을 조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현대증권 노조는 이미 “현대그룹이 마련한 1조2000억원은 넥스젠캐피털의 자금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넥스젠캐피털은 2006년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주식 스와프 계약을 했다. 넥스젠캐피털이 현대상선 주식 600만 주를 매입해 5년 뒤 이를 현대엘리베이터에 되팔되, 이익이 생기면 20%를 가져가고 손실이 나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전액 보상해 주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1조2000억원이 넥스젠캐피털의 자금이라면 현대그룹에 불리한 조건이 달려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넥스젠캐피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대출확인서에 넥스젠캐피털 등기이사 2명의 서명이 들어간 것에 대해선 “이들은 나티시스은행 임원을 겸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6일 주주협의회가 대출계약서 제출을 재차 요구한 것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현대그룹 관계자는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 대출계약서를 내라는 것은 유례가 없고, 통상적인 관례에 완전히 벗어난 요구”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과정에 1조원을 투자받는 조건으로 독일 M+W그룹의 모기업인 오스트리아 스툼프그룹에 현대건설의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넘기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스툼프그룹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을 요구해 투자가 무산됐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은 매각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원배·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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