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일대 포구에 비친 어민 삶 … 60대가 새만금 향수 담은 다큐 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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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새만금 징게맹게 포구를 가다’를 심포항에서 촬영하고 있는 모습. [김제문화원 제공]

“시작” (레디고) “여기까지” (커트)

 지난달 30일 정오 무렵 전북 김제시 심포항.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삼각대 위 카메라의 앵글을 돌려 가면서 포구 곳곳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바다에 나가 숭어를 가득 싣고 돌아오던 20여 척의 어선도 찍었다. “삶의 터전이 사라져가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어민들의 목소리도 녹음했다.

 1시간 동안 촬영을 마친 이들은 1㎞쯤 떨어진 어전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약 3000㎡의 갈대밭이 바람에 따라 은빛 물결처럼 휩쓸리는 모습을 잡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폐 어선과 갈대밭이 선명한 구도를 이룬 장면을 보고는 “작품이다” “풍경이 살아 있어 좋다”며 서로 격려하기도 했다.

 새만금 간척지 인근에서 태어나고 자란 60대들이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김제시에 사는 한갑열(69)·유문자(69)·김기웅(56)·장양례(60)·권희옥(64)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최근 다규멘터리 ‘새만금 징게맹게 포구를 가다’의 촬영을 마쳤다. 징게맹게는 서해안의 젖줄 만경강을 일컫는 지역 언어다. 백합의 최대 생산지였던 심포항, 많은 조개류가 서식하는 거전갯벌, 민물고기가 풍성한 신창포구 등 어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새만금 사업으로 생계 터전을 잃고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나가는 만경강 일대 주민의 삶과 자연생태계의 변화를 담고 있다.

 다큐를 제작한 5명은 김제 5일장이 열릴 때마다 방송하는 ‘지평선 FM라디오’의 진행자들이다. 한갑열씨는 “새만금 내부 개발이 진행되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고장 김제에서 바닷가로 나가는 길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그 전에 영상기록을 남기자고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실제 촬영은 10월 중순부터 한달 반 동안 진행했다. 이를 위해 김제문화원과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카메라 사용법과 앵글잡기·촬영기법 등은 전북대 지역미디어센터의 도움을 받아 익혔다. 다큐멘터리는 20분 분량으로 제작 중이다. 녹음·편집 등 후반부 작업을 거쳐 완성되면 독립영화제·노인영화제 등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김기웅씨는 “한 대에 1000만원 가까이 나가는 고가의 장비를 빌려 사용하다 보니 신경이 매우 쓰여 철새 군무나 저녁 노을 등 멋진 장면을 감상하지 못했고, 나이로 인한 육체적 한계를 실감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옛 고향 모습을 영상물로나마 후손들에게 남기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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