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북한 고삐 안 잡으면 서해서 미군 자주 볼 것”… 오바마 격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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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7함대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9만7000t급)이 24일 오전 7시30분 모항인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 기지를 떠났다. 28일 서해로 진입한다. 북한의 23일 연평도 공격 뒤 한·미 양국이 내놓은 첫 번째 조치다. 대북 무력 시위의 일환이다. 미리 계획됐다고 주한미군 측은 밝히고 있지만 긴급히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 정상의 통화 직후 발표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확고한 대한 방위공약이 감지된다.

항모 파견은 베이징(北京)을 통한 평양 압박일 수도 있다. 이는 “이번에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분명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중국이 대북 관계에 있어 (한·미와) 협력을 같이해야 한다고 (중국 수뇌부에) 통화하겠다”고 말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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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는 24일 미국이 조지 워싱턴함을 서해에 파견키로 한 것은 “중국이 제멋대로 구는 동맹국, 즉 북한의 고삐를 잡지 않을 경우 중국 영토 근처에서 미군을 좀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란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 관계자도 “조지 워싱턴함이 참가한 한·미 연합훈련은 지난해 10월에도 실시했고 우리 영해, 공해에서 해온 훈련”이라며 “중국이 조지 워싱턴함의 서해 진입으로 마음이 불편하다면 이 상황을 야기한 원인, 즉 북한을 압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워싱턴함 파견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또다른 타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3·26 천안함 사건 뒤 조지 워싱턴함이 참가하는 서해 연합훈련 계획을 발표했다가 중국의 반발로 일정을 미뤄 동해에서 실시했다. 이번에 미국은 전격적 훈련계획 발표 후 곧바로 중국에 통보했다. 서해를 공해가 아닌 중국의 앞바다로 간주해온 중국을 견제하려는 색채가 짙다. 중국 외교관들은 워싱턴함의 서해 훈련에 대해 “서해엔 공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해에서의 항해 자유와 국제법 준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 내건 대아시아 정책의 핵심이다. 조지 워싱턴함의 서해 진입은 미국의 동북아 개입의 상징이다. 항공모함이 갖는 파괴력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동북아 격랑의 예고편일 수 있다. 해군력 확장에 박차를 가해온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 때문이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함은 서해에서 중국 연안의 핵심 도시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자국 영해라는 주장을 앞세워 조지 워싱턴함의 서해 진입을 극렬하게 반대한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조지 워싱턴함은 한·미 연합 서해 훈련에 참가했지만 당시 중국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안함 이후엔 달랐다. 중국이 급부상해 미국과 G2체제를 이루면서 강한 입김을 내기 시작했다. 올해는 미국과 무역·환율, 남중국해에서의 중국-동남아 일부 국가 간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이 와중에 조지 워싱턴함 서해 진입은 미·중 간 새로운 대립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연평도 공격에 격노한 오바마=미국은 23일(현지시간) 이례적으로 백악관 성명을 통해 한·미 연합 훈련 사실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오전 4시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보고 받았다. 빌 버튼 백악관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한다. 인디애나주로 출장을 다녀온 오바마 대통령은 곧 바로 백악관 상황실로 향했다. 톰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 국장,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화상 참여) 등으로부터 ‘연평도 도발’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백악관 관계자는 “마치 미국이 수행 중인 아프간전 전략회의 같았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 자리에서 동맹국 한국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지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고, 백악관은 서해상 한·미 연합훈련 계획을 발표했다.

김수정 기자·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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