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함께 말려 보실까요, 겨울이 든든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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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말리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식품 저장법이다. 저장식품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특히 이맘때면 수확한 곡류와 양념류를 비롯한 각종 과일·채소·나물을 말려 두고두고 식재료로 쓴다. 따갑고 건조한 가을볕에 지금 한창 싸고 맛있는 호박·가지·고추·무·무청 등을 말려 두면 채소값이 비싼 겨울에 요긴한 먹을거리가 된다. 볕에 말리면 좋은 식품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말리면 좋을까. 전문가 3인에게 조언을 구해 직접 말려 봤다.

글=윤서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움말=박종숙 한국음식연구가, 김혜경 82cook 대표, 박순애 전통음식학원장
식품건조기 협찬=리큅 장소
협찬=유진하우스

기본학습

어떻게 말릴까

애호박과 표고버섯은 햇볕에, 감과 사과는 식품건조기에 말렸다. 과일은 자연건조 중 벌레가 꼬일 수 있어 식품건조기를 이용하는게 편하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햇볕과 바람을 이용한 자연 건조법이다. 데치거나 얇게 썬 채소와 과일을 채반에 널어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놓아 두고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말리면 된다. 하지만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햇볕과 바람이 넉넉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래서 나온 게 식품건조기다. 열선과 팬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더운 바람을 일으켜 식품을 건조시킨다. 식품건조기를 이용하면 4~5일 걸리는 건조 시간을 6~7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뚜껑을 닫아 청결하게 말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매일 쓰지 않는 식품건조기를 장만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오븐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100~120도에서 1~3시간 구우면 고구마·감자·연근 등 딱딱한 뿌리채소나 사과·바나나 같은 과일을 바삭하게 말릴 수 있다.

무엇을 말릴까

“원하는 건 뭐든지 말릴 수 있어요. 그렇다고 모두 똑같이 말리면 안 돼요.” 전문가 3인은 재료마다 밑 손질이 다름을 강조한다. 애호박·가지·무는 얇게 썰어 그대로, 고구마 순·토란대·고사리·참취·무청·고춧잎 등 줄기를 먹는 나물은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 말린다. 사과와 고구마·감자는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탕물이나 식초물에 20분 정도 담갔다 사용한다. 바나나·키위·파인애플은 말랑한 상태에서 말려야 말린 뒤에도 식감이 좋다. 일반적인 밑 손질법 외에 전문가만의 특별한 비법도 있다. 박종숙 한국음식연구가는 무를 쌀뜨물에 살짝 불려 사용하면 무 특유의 매운맛과 냄새가 없어지고 맛도 좋아진다고 귀띔한다. 또 늙은 호박은 식품건조기로 살짝 말린 뒤 자연 건조하면 고운 노란색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김혜경 82cook 대표는 표고버섯의 밑동과 갓을 분리해 말린다. 섬유질이 단단한 밑동이 간혹 잘 안 말라 곰팡이가 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밑동을 쪽쪽 찢어 말리면 더 잘 마르고 식재료로 쓰기도 편하다.

실전응용

대봉의 껍질을 깎아 햇볕에 말린지 1주일 만에 달콤하고 쫀득한 곶감이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에게서 배운 방법을 집에서 실천해 봤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떫은 감과 대봉의 껍질을 깎아 감 꼭지에 끈을 묶어 햇볕이 잘 드는 빨래 건조대에 서로 붙지 않게 매달았다. 애호박은 얇고 동글게, 가지는 길쭉길쭉하게 썰어 채반에 펴서 말렸다. 표고버섯은 갓과 밑동을 분리해 채반에 널었다. 고루 잘 마르도록 하루에 한 번 이상 뒤집어 주고 통풍을 위해 가끔 베란다 창문을 열어 줬다. 도심의 한복판이어서 먼지나 매연에 오염되지 않을까 염려됐다. 날씨가 좋아 애호박과 가지는 4일이 지나니 바싹 말랐고, 곶감은 일주일이 지나자 젤리처럼 말랑하고 달콤한 반건시가 됐다. 생각나면 하나씩 떼어 먹기도 하면서 보관이 편하도록 더 말리고 있는 중이다.

 햇볕에 4일 이상이 걸린 애호박·가지 말리기가 식품건조기를 이용하면 7~8시간이면 된다. 6단의 채반에 원하는 재료를 얇게 썰어 올린 다음 뚜껑을 덮고 온도와 시간을 맞추면 끝. 가지·애호박·키위·사과·감·묵을 넣고 70도, 7시간으로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건조가 완료돼 있었다. 그런데 위쪽 채반에 담긴 것은 아래쪽 채반에 담긴 것보다 덜 말라 있다. 꾸덕꾸덕한 감과 키위는 과일젤리 같은 색다른 맛은 있었다. 위아래 채반의 위치를 바꿔 1시간 더 말려 줬다.

 오븐은 단시간에 가장 바싹 말릴 수 있다. 식품건조기로 말릴 수 없는 감자와 고구마도 얇게 저며 데친 뒤 150도에서 2시간 정도 구우니 바삭바삭한 천연 과자가 됐다. 고구마·감자칩 못지않게 오븐에 구운 사과칩과 바나나칩도 그 맛이 훌륭했다. 사과와 바나나는 100도에서 2시간 건조시켰는데, 향과 당도가 더 진해졌다. 바삭한 과자로 먹어도 맛있지만 작게 부숴 우유에 타 먹거나 샐러드에 뿌려 먹으니 향이 아주 좋았다. 내친김에 베란다에서 키우는 허브 잎들을 따서 바싹 말려 가루를 내어 향신료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과일 과자에 감자칩·고구마칩, 조미료까지 지퍼백과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놓으니 뿌듯하고 풍요로워진 느낌이었다. 어머니·할머니들이 김장이나 장을 담그고 나면 든든하다고 하신 그 마음을 알겠다.



별미 마른 음식 만들어 보기

단순한 제철 식재료 갈무리뿐만 아니라 별미 마른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김혜경 대표는 육포와 홍삼을, 박순애 전통음식학원장은 건더덕장아찌를 소개한다.

●육포 쇠고기를 넓적하게 펴서 말리기는 어렵다. 대신 다진 쇠고기를 이용하면 쉽게 육포를 만들 수 있다. 다진 쇠고기를 소금·후추·설탕·간장 등으로 양념해 손으로 사각형 모양을 잡아 식품건조기에 12시간 정도 말리면 맛있는 육포가 된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리는 포로 쓰면 좋다.

●홍삼 가을이 제철인 수삼을 말려 값비싼 홍삼을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수삼을 찐 다음 식품건조기에 하루 정도 말리는 과정을 4~5번 반복한다. 완성된 홍삼은 달여 먹거나 삼계탕에 넣는다.

●건더덕장아찌 더덕은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뺀 다음 방망이로 두들겨 편 뒤 말린다. 바로 말리지 않으면 누렇게 변하니 주의한다. 하루 반 정도 꾸덕꾸덕하게 말린 더덕을 삼베주머니에 넣어 고추장 또는 된장에 2~3달 동안 박아 놓으면 훌륭한 장아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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