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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자유'와 부시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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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중순 취임연설을 하면서 자유의 확산과 인권을 강조했다. 연설을 끝낼 때까지 그가 사용한 '자유'란 단어는 무려 49차례나 됐다. 자유와 인권에 대해 언급한 미국 대통령은 부시가 처음이 아니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강한 집착과 언급으로 미국이 자유의 신장과 확산의 의무를 가진 국가임을 숨기지 않았다. 또 세계도 이러한 미국의 자유확산 의지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외친 '4대 자유'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온 루스벨트의 연설은 전 세계를 향한 신선한 충격이자 희망이었다. 미국과 세계가 자유로 연대한 또 다른 사건은 1963년 6월 23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 나왔다. 당시 베를린 봉쇄에 항의해 장벽 앞에 선 존 F 케네디는 "모든 자유인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건 베를린 시민이므로 저 또한 한 자유인으로서 베를린 시민임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외쳤다.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케네디의 명언은 당시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의 확산을 열렬히 지지한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외치던 구호였다.

하지만 부시의 자유 확산에 대한 연설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엄 촘스키와 같은 미국의 양심적 지식인 등 미국 내부는 물론이고 세계로부터 거부감을 더 많이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럽의 언론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미국이 그런 자격이 있느냐'고까지 반문한다.

무엇이 같은 '자유'라는 단어를, 같은 '미국의 대통령'이 사용하는데 이처럼 상반된 반응을 일으키게 했을까. 루스벨트나 케네디와 부시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미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적을 죽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 설 협력자들을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에 있는데 부시는 그 계산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깅그리치의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난날 미국은 자유를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로 활용해 확산시켰다. 많은 나라는 미국이 외치는 자유의 확산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매력의 대상으로서 자유를 활용한 미국의 태도는 세계 최강국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 대신 미국을 그들의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게 했다.

그러나 부시의 미국은 자유가 갖고 있는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힘을 상당 부분 상실시켰다. 유엔이 이야기하듯 냉전 후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일방주의적 태도와, 인권에 대한 이중 기준, 미군의 간섭과 보호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무장자유선거'인 이라크 선거 강행의 모습들엔 자유의 매력보다는 미 군사력의 과도한 사용과 지나친 간섭이 겹쳐진다.

이는 지난 세기 미 대통령들이 말한 자유나 인권의 이념과는 거리가 있다. 부시가 좋아한다는 샤란스키의 '광장에서 외칠 수 있는 자유'라는 개념과도 거리가 있다. 부시의 자유확산 혹은 자유 강제의 행위는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군사.정치적 목적의 하위개념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인이 꿈꾸는 모델국이려면 힘의 강제가 아닌 매력으로서 상대를 설득하고 끌어들여야 한다. 부시가 연설에서 49번이 아니라 490번 자유를 외친다 해서 세계에 '미국식 자유'가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 확산은 강제가 아닌 매력에 더 의존한다. 미국이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에서 하드 파워로 자유의 확산을 이루려고 한다면 미국의 매력은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