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서 나온 윤빛가람·백지훈 제2 전성기 … 선수는 감독하기 나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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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99년 스무 살 스트라이커 다카하라 나오히로는 일본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현 U-20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여섯 시즌 활약했고, 그 기간 일본 대표팀 주공격수였다. 하지만 운명은 지난해 소속팀이던 우라와 레즈에 폴커 핑케(독일) 감독이 오면서 꼬였다. 핑케 감독은 다카하라를 믿지 않았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진 그는 올 7월 수원으로 옮겨왔다. 오래 쉬어 체력과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윤성효 수원 감독은 “정상급 선수는 어떻게 할지 알고 있다”며 믿고 기용했다. 다카하라는 K-리그 데뷔 네 경기 만에, 그것도 라이벌 FC 서울전에서 결승골 포함 두 골을 터뜨렸다.

선수는 감독하기 나름이다. 부부 사이만큼이나 감독과 선수의 궁합은 중요하다.

‘조광래의 황태자’ 윤빛가람(경남)은 잊혀진 선수였다.

고교 시절이던 2007년 그는 인터뷰에서 “재미없고 느려서 K-리그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실력도 없는 선수가 건방지다’는 낙인이 찍혔다. 그는 슬럼프에 빠졌고 여러 지도자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윤빛가람을 눈여겨봤던 조 감독은 경남 사령탑이었던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뽑아 팀의 주축 선수로 키웠다. 조 감독은 늘 “윤빛가람은 대표팀에 뽑혀도 손색없다”고 칭찬했다.

다들 선수의 기를 살리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 감독은 대표팀을 맡자마자 그에게 태극마크를 달아줬고, 그는 A매치 데뷔전에서 결승골로 보답했다.

스피드가 좀 떨어지지만 영리한 미드필더라는 점에서 윤빛가람은 조 감독의 젊은 시절을 빼닮았다. 스승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가르침은 그에게 금과옥조였다.

소심한 성격 탓에 차범근 감독 시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백지훈(수원)은 윤성효 감독 밑에서 펄펄 날고 있다. 그의 성격을 헤아린 윤 감독이 “절대로 빼지 않을 테니까 눈치보지 말고 뛰라”고 자신감을 북돋워 준 게 주효했다.

서울에서 벤치를 지키다 중국 프로축구까지 갔다 온 김은중(제주)은 올 시즌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자신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스타일을 잘 아는 박경훈 감독이 간섭보다는 믿고 맡기는 쪽을 택한 덕분이다. 김은중은 “감독님이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걸 알고 있어 더 열심히 뛴다”고 했다. 올 시즌 김은중은 11골·7도움으로 데뷔 후 자신의 최고 성적을 기록 중이고 팀은 K-리그 선두다.

장지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사례는 조금씩 달라도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강한 신뢰가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공통 점”이라고 풀이했다. 신뢰가 궁합의 제1조건인 셈이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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