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펀드 투자] 환 헤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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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해외펀드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 중 하나는 환율이다. 환율 변화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대다수 해외펀드는 ‘환 헤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펀드가 환 헤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만 환 헤지를 하거나 환 헤지와는 무관한 ‘환 투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환 헤지는 펀드가 투자한 외국 주식의 본질적 가치 변화가 아닌 해당 통화와 원화 간 교환가치 변화로 인한 손실위험을 피하는 수단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가 환 헤지를 하는 방법은 매입한 주식 평가금액만큼 원-달러 선물 등을 매도하는 것이다.

브라질 주식에 투자한 펀드가 환 헤지를 하려면 원화와 브라질 헤알화 간 환 관련 파생상품을 통해 환 헤지를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거래시장은 없다. 환 헤지를 꼭 하려면 우선 달러-헤알화 간 선도거래(거래소를 통하는 것이 아닌 계약 상대방끼리 현재 정한 가격으로 미래의 일정 시점에 사고팔 것을 미리 결정하는 계약)를 하고 다시 원-달러화 간 선도거래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인 환 헤지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원화에 대한 정상적 환 헤지가 가능한 통화는 국제 간 결제통화로 사용되는 달러·유로·엔·영국파운드·스위스프랑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국·인도·브라질 등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환 헤지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이머징 마켓 주식펀드의 환 헤지는 사실상 힘들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펀드들의 투자설명서를 세밀히 검토해 보면 “환 헤지를 하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것만 봐서는 환 헤지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환 헤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보면 된다.

어떤 펀드는 브라질 주식에 투자하면서 원-달러 선물매도 포지션을 잔뜩 취하고서 환 헤지 포지션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브라질 주식의 달러 표시 예탁증서(DR)에 투자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원-달러 선물을 매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경우는 정확히 말하면 환 헤지가 아니라 환 투기에 해당한다. 달러 표시 예탁증서를 매입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원주(발행 주식)인 헤알화로 표시된 브라질 주식에 투자한 것이기에 헤알화에 대한 헤지가 이뤄지지 않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제대로 하려면 원-달러뿐만 아니라 달러-헤알화 간에도 환 헤지를 해야 한다.

채권의 환 헤지는 주식과는 다르다. 달러화로 표시된 브라질 채권처럼 해외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의 환 헤지는 원-달러 매도만으로 환 헤지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머징 마켓 국가들의 고금리 채권 중에는 달러·유로·엔 등 국제결제 통화로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 채권 발행자가 만기 때 국제결제 통화로 갚기로 하고 발행했기 때문에 환 헤지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현지 통화로 된 채권에 투자하는 해외 채권펀드는 환 헤지가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투자설명서를 꼼꼼히 읽어 낭패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

◆최상길 전무=1992~99년 서울경제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했고 이후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서 펀드 평가와 기관투자가 컨설팅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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